우당탕탕 첫 인터뷰, 배해률 작가와의 만남♥️ 치여서 모난 존재들을 한데 그러모아 희곡에 담습니다. 예리한 시선으로 우리를 둘러싼 관계와 일상을 포착합니다. 그러곤 그걸 참 착한 세계 속에 펼쳐 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번 국도> <비엔나 소시지 야채볶음> <여기, 한때, 가자> <사월의 사원> <서울 도심의 개천에서도 작은발톱수달이 이따금 목격되곤 합니다> 2019년 데뷔 이후 공백기 없이 작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연극 <시차> 개막을 앞두고 배해률 작가를 만났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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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 편집자와 극작가의 대화를 여는 첫 질문은 아무래도 “최근 읽은 희곡 또는 좋아하는 극작가” 같은 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안일한 생각으로 인터뷰를 시작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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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 작업하면서 레퍼런스를 찾다가 배삼식 작가님의 <먼 데서 오는 여자>를 다시 한번 읽어 보게 됐어요. “천천히 슬퍼진다!” 그 감각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기억을 되새기며 가다 보면 그 기억 속에 참사가 자리하고 있잖아요. 참사에 천천히 다가가게 하는 지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좋아하는 작가는, 고르기가 어렵더라고요. 동료들의 다양한 작품들 읽으면서 독특한 감각 탐이 나기도 하고. 그런데 누구 하나 선택하기는 어려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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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 편집자지만 주변에 희곡을 읽는 사람은 참 드뭅니다. 희곡을 쓰는 사람은 더 드뭅니다. 항상 궁금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무엇 때문에 하필 ‘희곡’이란 걸 쓰기로 하는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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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연극을 좋아했어요. 공연을 자주 보러 다녔는데 연극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런 게 궁금했어요. 대본은 누가 어떻게 쓰기 시작하는 거지, 찾아봤더니 사는 곳 근처에 극작원이라는 데가 있더라고요. 대학로 인근에 살고 있었거든요. 등록을 했죠. 일반인에게 극작 기초 강의를 해 줘요. 취미로 시작한 건데 기왕 쓴 것 공모전에 내 볼까, 그랬는데 그게 된 거죠. 그렇게 하게 되고 하게 되고 하게 되고 하다 보니... (지금까지 이 일을) 하게 됐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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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 기초 강의?! 극작가 지망생은 처음, 무엇을 배우게 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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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내용, 피드백 중 기억에 남는 것?)
극작원 수업 들을 땐 강의 내용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지침 같은 걸로 받아들였죠. 희곡을 처음 써 보는 사람들이 듣는 수업이었으니까 희곡 쓰는 법을 아주 단순화해 가르쳐 줬어요. 가령 15쪽 분량의 희곡을 쓴다고 하면, 5쪽 이전에 사건이 일어나야 하고, 목적이 드러나야 하고 뭐 그런 식으로요. 그 리듬에 공감하기도 하지만 이제 와 돌아보면 지금 내가 쓰고 있는 희곡의 리듬과는 좀 다르죠. 그땐 이야기를 좀 더 흥미롭게, 극적으로 전개할 방법에 초점을 두고 가르쳐 줬던 것 같아요. 지금은 이야기를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충분히 마땅한 이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극적 순간을 만들 때는 좀 조심스러워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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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잘 쓰고 싶어 많이 보고 많이 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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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 <논어>에 나오는 말이라고 합니다. 저는 천계영의 만화에서 봤지만.
좋아하는 걸 업으로 삼아 오래 계속하려면 즐기는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주는 이 만화에서 즐기는 사람은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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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을 잘 쓰기 위해 한 노력이 있다면?)
총체적으로 다 했어요. 그러니까 많이 보러 다녔고, 기회를 많이 찾아다녔고, 많이 썼고요. 함께 스터디 했던 동료들이 제가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가져가니까 질색 팔색을 했죠. 그때는 뭔가를 빨리 쏟아 내야지 그랬어요. 쏟아 내고 그 결과를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컸던 것 같아요. 극작과나 문예창작과에서 희곡에 대해 많은 것들을 체계적으로 배우며 창작을 시작한 사람들에 대한 동경 같은 게 있었어요. 내게도 막연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배우고 싶다”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희곡을 배울 수 있는 자리를 많이 찾아다녔어요. 예전에 남산예술센터에서 당시 활발히 활동하시는 작가님들 특강을 열어 줬거든요. 그런 것도 신청해서 듣고. ‘초고를 부탁해’에 지원도 하고. 초고를 내면 현업 작가님들이 읽고 A4 한 장 분량으로 피드백을 써서 보내 주셨어요. 그걸 정말 소중히 여겼고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고연옥 작가님이 써 주신 피드백이 기억에 남습니다. “희곡은 답을 내리는 순간 납작해질 수 있다. 오히려 희곡은 하나의 잘 벼린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때 저는 희곡의 만듦새를 신경 쓰면서 참 단정하게 쓰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결말이 답안처럼 정리돼 있었거든요. 희곡 안에서 답까지 던져 주는 방식으로. 지금도 고연옥 작가님의 피드백을 떠올리며 섣불리 마침표를 찍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일부러 피드백과 반대로 해 오고 있는 것도 있어요. 계속해서 기회를 찾다가 대학원에서 음악극 창작을 전공했습니다. 그때 종종 “착한 인물, 착한 존재는 극적 긴장, 갈등을 형성하는 데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착한 인물들은 싸우지 못한다는 거죠. 저는 착한 인물도 충분히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니 오히려 착하기 때문에 싸울 수 있죠. 지금은 그때 들었던 피드백을 반증할 수 있는 걸 써 봐야지 하는 마음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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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쓴 “희곡”은 무대 상연으로 완성됩니다. 무대를 본 극작가는 대개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해요. “이 장면이 어떻게 이렇게?” 그건 전율일 수도, 실망일 수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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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무대에서 보고 놀란 경험이 있다면?)
<서울 도심의 개천에서도 작은발톱수달이 이따금 목격되곤 합니다> 희곡에 “컨베이어 벨트가 멈추고 그 아래로 플라스틱이 떨어진다” 정도로 표현했던 지문이 있습니다. 그걸 연출님이 거대한 플라스틱 파도가 무대에 쏟아져 내리는 것으로 해석해 주셨어요. 그 장면 봤을 때 (긍정적인 의미로) 많이 놀랐습니다. 저는 그 장면으로 로봇과 한 인간이 플라스틱 선별장에서 더 이상 일하지 않기로 하는 사적인 선택을 보여 주려던 거였어요. 그런데 그게 무대 지형을 바꾸는 거대한 구조물이 되어 공적인 사건으로 표현된 거죠. 작은 의미를 크게 발견해 준 데 대해 긍정적인 의미의 놀람이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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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을 편집하지 않을 때 편집자는 드라마 <정년이>를 봅니다. 희곡을 쓰지 않을 때 극작가는 무엇을 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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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를 보내는 방법은?)
평일에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수영을 해요. 넷플릭스도 봐요. 최근엔 <흑백요리사>를 봤고요. 급식대가님을 응원했습니다. 그리고 극장에 자주 갑니다. 예전엔 공연 보러 가는 것 자체가 재밌고 특별한 일이었어요. 물론 지금도 특별하지 않은 건 절대 아닙니다만... 특별함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좀 익숙해지는 면이 있어요. 작품을 보면서 나라면 어떻게 썼을까, 직업적으로 생각하게 돼 버린 건 안타까우면서 한편 좋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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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동시대 크고 작은 사건들 속 타자를 향한 선의에 대해 이야기하는 극작가 배해률의 창작과정을 낱낱이 파헤져보는 시간! [출처 : 두산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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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른 시공간의 참사가 지금 어떻게 만나고 있을까, 연극 <시차>의 시작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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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시차>에 대해 들어 볼 차례입니다. 이 작품은 1994년 10월, 2014년 4월의 참사를 배경으로 합니다. 그때 우리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그 놀랍고 슬픈 시절을 우리는 어떻게 지나왔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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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소식을 언제, 어디서 듣게 됐나?)
1994년 성수대교 붕괴에 대해선 기억이 없습니다. 그때로부터 시간이 좀 지나 가을이면 그날 그런 일이 있었다 하는 식의 뉴스가 보도되곤 했는데, 그렇게 알게 됐어요. 세월호 참사는 아주 가깝게 느껴지고, 계속해서 만나게 되고, 또 작업하면서 떠올릴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가족들과 밥 먹다가 뉴스로 소식을 접했는데 오보가 나오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중도에 텔레비전을 껐고 다시 틀었을 때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놀랐죠. 속초에서 군 복무를 했습니다. 상근예비역이었어요. 해안 보초를 서느라 바다 보는 일이 많았죠. 참사 전후로 바다의 의미가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참사가 있었던 바다와는 분명 다르지만 또 같은 바다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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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이후 최근까지도 크고 작은 참사가 이어졌습니다. 뉴스에서나 보던 일이 이웃, 친척, 친구, 가족 그리고 내 일이 되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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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참사를 배경으로 삼게 된 이유는?)
오래전 알고 지낸 인연이 한쪽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 한쪽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되어 서로를 발견하고 다시 연이 닿게 됐다는 사연을 봤습니다. 참사로 인해 재회하게 된 거죠. 마음이 복잡해지더라고요. 그리고 하나는 내가 감각한 적 없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했고, 다른 하나는 내가 지속적으로 만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인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두 참사가 어떻게 만나고 있을까, 그게 <시차>의 시작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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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분신이 아니라 자체로 살아 있는 캐릭터를 만나면, 어딘가에 그와 그의 세계가 실재할 거란 상상을 합니다. 배해률 작가는 인물들이 작가의 계획에서 벗어나 의외의 선택을 해 주길 바란다고 말합니다. <시차>에도 그런 장면이 있습니다. 인물에게 오롯이 선택을 맡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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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에게 선택을 맡기고 따라가 본 장면이 있다면?)
극 막바지에 세민과 선아가 윤재 장례식을 치러 주기로 한 장면입니다. 퇴고 직전까지 다양한 버전을 생각했습니다. 최종 선택을 두고는 개연성을 따져 보기도 했는데, 충동적으로 거기까지 시도할 수 있는 인물들이다라는 게 결론이었습니다. 그들의 충동, 목적, 욕망에 동의하게 됐고, 결국 그들 선택을 따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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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묻고 싶어요, 참사 이후 우리, 어떤 것들이 달라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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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연, 혼인으로 엮인 ‘가족’보다 그 바깥의 관계들에서 더 끈끈한 유대, 굳건한 믿음을 얻게 되기도 합니다. 연극 <시차>의 중심에도 그런 관계들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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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 가족 관계를 통해 말하려는 것?)
무대 위에서 뭔가 안정적이고 소위 정상 범주에 드는 가족의 단란한 모습을 보기가 싫었습니다. 일종의 정상성을 갖춘 집단이 행복을 성취하는 것에 반감이 있었죠. 그래서 유사 가족, 공동체의 모습을 더 많이 상상하려 했던 것 같아요. 실제로는 가족, 공동체 형태가 다양한데 매체에선 매번 같은 형태의 가족만 보여 주는 게 아쉬웠어요. 관계의 다양성을 제시하는 데서 끝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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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은 잘 벼린 질문 하나를 던질 수 있어야 한다는 고연옥 작가의 피드백을 상기하며, 연극 <시차>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엇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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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가 닿을 수 있는 다양한 방식들에 무엇이 있을까” 이게 질문이라면 질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의 질문만 벼려서 던져야 하는데 다양한 질문들을 떠올렸던 것 같아요. 희곡은 결말에서 어느 정도 낭만적이기 마련이더라고요. 그걸 깨트림으로써 오히려 현실은 어떤가에 대한 질문도 던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현실은 어떤가요?” 하고. 또 “선의가 항상 고결하고 옳기만 할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것일까?” 이런 질문도 던져 보고 싶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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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연극 <시차>를 보고 우리는 어떤 질문을 하게 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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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참사를 멀리서 바라본 사람입니다. 당사자는 아니죠. “그런 내가 참사의 당사자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참사 이후 나는 어떻게 변했나, 무엇이 달라졌나”, 극을 쓰면서 내 삶과 생활을 반추해 보게 되었습니다. 관객분들과 그런 경험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현오는 참사 이후 관계 맺는 방식에 어려움을 겪고 비관적인 상상만 하게 돼요. 습관처럼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염려하는 인물인데 저도 사회적 참사를 목도하면서 어느 정도 그런 염려 속에 살게 된 것 같아요. 관객분들께도 각자 그런 것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관객분들께 되려 묻고 싶기도 해요. “어떤 것들이 달라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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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폭력의 반대편으로 나아가 그걸 무대에 올려 보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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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해률 작가는 스스로 “고통에 대한 역치가 낮은 편”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도 “고통을 무대 위에서 안전하게 만나도록” 하는 작업을 계속해 왔습니다. 분명 고통이 수반되는 일일 겁니다. 그것으로 이루고 싶은 것, “연극에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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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서 참사의 장면들을 재현해야 한다는 데 부침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계속 부딪치려고 했던 것 같고요. 어떤 연극은 무대에서 강한 이미지로 고통을 재현합니다. 그러면 무대 위에 폭력, 가해의 순간들이 너무 많아지죠. 그런 무대를 볼 때 개인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그건 이미 현실에서 너무 자주 접하고 있거든요. 현실의 부조리와 폭력 반대편으로 나아가 보고 싶었고, 그걸 무대에 올려 보면 어떨까에 초점을 뒀습니다. 폭력, 고통에서 멀어지려고 하는 사람, 존재들의 이야기를 무대에서 보고 싶었습니다. 당장은 그게 제가 생각하는 무대에서의 지향점인데, 그런 것 같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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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동시대 크고 작은 사건들 속 타자를 향한 선의에 대해 이야기하는 극작가인 배해률의 작품 '시차'의 탄생배경부터 애착 대사까지! [출처 : 두산아트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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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질문은 “유퀴즈?”였습니다. 정답을 맞혀 보시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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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파울루는 브라질의 금융 중심지이자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 중 한 곳입니다. 지난 8월, 상파울루 도심 주택가에서 발생한 여객기 추락 사고로 탑승자 전원이 사망해 전 세계를 충격과 슬픔에 빠트렸습니다. 상파울루와 서울의 시차는 열두 시간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현재 상파울루는 몇 시, 몇 분일까요? 정확히 맞혀 주셔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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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게 인터뷰를 마치고 싶어 퀴즈를 준비했는데 생각보다 자주, 그것도 도처에서 참사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숙연해졌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산재해 있는 고통을 잇다 보니 알겠습니다.
그게 언제든 내 몫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시차>를 봐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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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9일부터 11월 16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연극 <시차>가 공연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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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 개막에 맞춰 희곡이 출판되었다는 소식도 전합니다.
네, 지만지드라마 책이 아닙니다.
이음희곡선입니다.
응원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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