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브룩은 조엘 폼므라를 “장인”이라고 부르며  현대 가족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대표작 <이 아이>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이제 조엘 폼므라는 어른과 아이 모두를 놀래 줄 피노키오를 부활시킵니다.

조엘 폼므라의 <피노키오>가 시작되자마자 관객은 암흑 속에 빠져듭니다. 폼므라의 공연에선 흔한 장면입니다. 암전이 잦고 조명은 어둡죠. <피노키오>의 내레이터, 정확히는 프레장타퇴르(présentateur, 해설자)는 어릴 때 실명하게 된 사연을 설명합니다. 그러는 동안 인물들이 나타나죠. 몇몇은 동물 가면을 쓰고 무대 뒤쪽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습니다. 귀엽다기보단 오싹한 느낌이 드는 가면입니다. 프레장타퇴르는 자신의 유일한 임무가 진실을 전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규칙은 거짓말의 위험성에 대해 다룬 카를로 콜로디 원작과 일치합니다. 폼므라의 작업 방식과도 맞아떨어지죠. 그의 작품은 불편할 정도로 솔직한 진실로 가득 차 있으니까요. 특히 <이 아이>(2006)는 부모 자식 간 불편한 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폼므라가 창작한 아동극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피노키오>의 관객들은 목재 인형인 주인공 자체가 그렇듯 세상이 잔혹함으로 가득 차 있음을 보게 됩니다. 디즈니 스타일의 귀여운 크리켓은 없습니다. 

폼므라는 1990년 극단을 설립했습니다. 초창기부터 함께한 단원들 몇몇이 여전히 그와 함께 작업 중입니다. 폼므라의 극단은 유럽 전역에서 활발히 투어 중입니다. 폼므라가 쓰고 연출한 작품들을 선보이죠. (...) 폼므라의 무대는 흐릿하고 몽환적입니다. 조명의 마법사 에리크 쇼에 덕분입니다. <이 아이>의 경우 커튼콜 때 관객들이 배우의 얼굴을 처음 제대로 보게 됩니다. 

“무대에서 모든 얼굴을 꼭 드러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파리에서 폼므라가 한 말입니다. “관객들이 다른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얼굴뿐 아니라 몸 전체를 보여 줍니다. 그러면 배우들을 통해 스스로를 볼 수 있게 되죠. 소설을 읽을 때처럼요.” 그 결과 폼므라의 공연은 매우 친밀하게 느껴집니다. 관객을 무대 쪽으로 끌어당기죠. 

  

폼므라는 아버지가 된 뒤 처음 가족을 위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빨간 모자>(2004)를 딸에게 헌정했죠. 딸이 동화 속 어린 소녀에게 공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이 작품을 통해 연극에 관심을 갖길 바랐죠. 이후 <신데렐라>(2011)를 비롯해 동화를 마법 같은 해석으로 무대화해 왔습니다. 영국 연출가 데이비드 랜은 폼므라의 <피노키오>가 “그만의 스타일에서 느껴지는 기묘함, 특이함으로 가득하며 작품 전반에 흐르는 마법과 우울의 분위기를 잘 포착했다”고 말합니다.

<피노키오>에서 미리암 애슐린은 눈에 멍이 든 채 검은 옷을 입고 등장합니다. 이상한 모자에서 투박한 신발까지, 매우 낯선 모습이죠. 무대에서 이야기를 이끄는 프레장타퇴르조차 동화를 읽으며 상상했던 온화한 인물과는 거리가 멀고요. 피에르 이브 샤팔랭이 삭발하고 상반신을 드러낸 채 프레장타퇴르를 연기합니다. 흰색 분필로 온몸을 칠해 유령 같기도 합니다. 폼므라의 프레장타퇴르들은 이렇듯 카바레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2007년 작 <Je Tremble>은 조명이 꺼진 상태에서 시작됩니다. 프레장타퇴르는 관객에게 “마지막에 여러분 눈앞에서 죽을 것”이라고 예고하며 “두 눈 똑바로 뜨고 보라”고 말합니다. 이 한마디에 폼므라가 무대에서 보여 주려는 게 뭔지 다 담겨 있습니다. 피터 브룩은 폼므라는 “오늘날 가장 뛰어나고 창의적인 연출가”라 부르며 “단순한 작가, 연출가가 아니라 말, 연기, 무대장치, 소리, 사회적 의미를 동시에 고민하는 장인”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덧붙이길 “그의 작품은 종종 우리를 혼란에 빠트리지만 우리의 열광적인 반응을 필요로 하죠”.

폼므라는 1963년 태어나 프랑스 남서부 로슈포르에서 자랐습니다. 부친은 군인이었습니다. 연극과 거리가 멀었죠. 여동생이 그를 연극으로 이끌었다고 합니다. “십대 때는 희곡을 많이 읽지 않았어요. 이십 대가 되어서야 체호프와 셰익스피어를 발견했죠. 감동이 오래갔습니다.” 십대 후반에 연기를 시작했지만 5년 만에 그만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배우로서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저와는 맞지 않았어요. 몇 년간 글만 쓰다가 결국 쓴 걸 직접 연출하게 되었습니다.” 1990년 루이 브루이야르를 설립하고 매년 새로운 작품을 무대화해 왔습니다. 라디오 드라마와 단편영화도 연출했고요.

폼므라는 배우들과 아주 정밀한 방식으로 작업합니다. 리허설과 글쓰기를 병행하며 특정 배우를 염두에 두고 캐릭터를 만들기도 하고요. “주로 아침에 글을 쓰고 오후에는 리허설을 통해 쓴 것을 실험해 봅니다.” 리허설 장면을 촬영해 두었다가 다시 보면서 글을 이어 씁니다. 배우들에게 즉흥 연기를 장려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대사나 텍스트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황의 본질을 찾기 위해” 그러기도 한다고 답했습니다. 

폼므라는 헌신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무대에 올립니다. 그가 <벚나무 동산>이나 <햄릿>을 연출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폼므라는 “기존 작품을 참조하지 않고 완전히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영향을 받게 된다는 걸 인정합니다. <이 아이>의 한 장면은 에드워드 본드의 작품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폼므라의 작품 전반에는 단절된 관계가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두 한국의 통일>(2013)은 (제목이 풍기는 분위기와 달리) 정치 이야기가 아닙니다. 위기에 처한 커플들에 대한 연구죠. <이 아이>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임산부가 아이에게 말을 거는 장면입니다. 자신이 어머니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아이에게 주겠다고 다짐하는 순간이죠. 

이 장면은 맥스 키가 제작한 영어 버전 단편영화(위 영상)에서도 재현되었습니다. <이 아이>에선 고통스러운 감정이 차곡차곡 쌓입니다. 관객은 밝고 희망적인 장면이 나오길 간절히 기다리게 되죠. 폼므라는 이 작품이 부모 자식 관계의 모든 면을 아우르는 초상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씁쓸하게 웃으며 덧붙이길 “행복은 무대에서 표현하기 어렵죠. 가끔은 지루하고요”.

폼므라는 무대를 통해 “이전에 말해진 적 없는 것”을 말하고 싶다고 합니다. 그는 관계가 시작될 때 하는 첫 말의 순간에 집중합니다. 그는 진실과 현실의 차이를 강조하며 말합니다. “진실은 도달할 수 없고 연극적으로 흥미로운 것도 아니죠. 제가 관심 있는 것은 연극이라는 인공적인 수단을 통해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을 재창조하는 겁니다. 따라서 그것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사진이 아니라 재구성입니다. 이런 재구성은 관객이 대상을 여러 면에서 볼 수 있게 해 주죠. 현실에서는 한 측면만 보게 되겠지만요.”

영국의 예술감독들은 폼므라에게 찬사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 중 영어로 제작된 건 <이 아이>를 비롯해 몇 편뿐입니다. 런던 유니콘 극장을 운영하는 퍼니 모렐은 이 작품이 “가족 관계를 다룬 다른 작품들과는 완전히 다르다”라고 말했습니다. 2008년에는 파일럿 극단의 수전 매클린 연출로 사우스워크 플레이하우스에서 공연되었습니다. 극단은 학생들과 함께 장면을 탐구하는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맞서며 수년간 그를 두려워했다고 털어놓는 장면이 나오는데, 매클린에 따르면 “많은 학생들이 그 장면을 직접 연기하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자녀이니까요. 어른이 되었지만 그 감정에 깊이 공감할 수 있습니다. 부모에게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은 그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그 말에 부모가 상처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혹은 부모의 반응을 두려워하면서도 말이죠. 그 두려움을 넘어 진실을 표현한 그 순간 말이에요.”

어린이들을 위한 작품을 만들 때도 폼므라의 목표는 같습니다. 그는 어린이들이 “검열 없이 진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자극합니다. 어린이를 위한 극을 만들려는 이유에 대해 폼므라는 “어린 시절 특히 그렇듯, 내가 어린 시절 듣고 싶었던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었다”고 설명합니다. 그의 작품들은 아이들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자극합니다. <피노키오>에 나오는 나쁜 행동들은 재밌게 묘사되지만 대개 웃음만을 위해 연출되지는 않습니다. 이 작품은 관객에게 쉽게 답을 주지 않습니다. 감정선은 복잡하며 철학적인 질문으로 가득합니다. <피노키오>가 “진짜 소년이 되고 싶다”고 외친 다음 프레장타퇴르는 관객들에게 묻습니다. “사람이 변할 수 있나요?” 피노키오가 부당하게 감옥에 갇히는 장면은 매우 충격적입니다. 이 불쾌한 주인공이 아무리 짜증 난다 할지라도 이 장면만큼은 놀랍죠. 프레장타퇴르는 무심하게 “인생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며 가끔 끔찍한 일들이 그냥 일어나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해피엔드로 끝맺는 듯하지만 그 안엔 고통과 피로가 깃들어 있습니다. 이야기의 교훈은 안갯속으로 사라집니다.

“루이 브루이야르”(폼므라가 이끄는 극단)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요? 폼므라는 말합니다. “실존하는 이름이지만 존재하지 않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루이 브루이야르’는 그림자와 어둠을 연상시킵니다…” 폼므라는 다시 한번 미소를 짓습니다. “밝음보다는 어둠속에서 더 편안함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