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 플로리앙 젤레르 <어머니>👵 어머니 La Mère 플로리앙 젤레르, 임선옥, 2010년 초연, 136쪽, 979-11-288-5619-8
개요 ‘빈둥지증후군’을 겪으며 우울과 광기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가족의 의미, 관계,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줄거리 전업 주부로 자녀들과 남편을 뒷바라지해 온 안느는 모두에게 버림받고 빈집에 홀로 남겨질지 모른다는 불안을 술과 약으로 떨치려 한다. 아들 니콜라에 대한 집착은 병적으로 커져 가고, 남편이 외도 중일 거란 의심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녀가 우울과 광기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남편과 아들은 무기력하게 지켜본다. 등장인물 남 2 / 여 2 배경 집 안 장과 막 4막 공연 시간 2시간 주제어 가족 / 빈둥지증후군 / 심리 / 미스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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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어머니가 슬픔에 빠져 있습니다.
평생 가족에게 헌신하며 살아왔는데 아들도, 남편도 더는 그녀의 도움을 원하지 않습니다.
가족에게 버림받고 빈 집에 혼자 남겨질까 가뜩이나 불안한데 남편이 수상합니다.
"이 남자 바람을 피우는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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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당신 세미나 이야기 다시 생각해 봤어. 내일 세미나.
내일 아침에 떠난다고? 얼마나 웃긴 일이야. 세미나라니?
당신 부재를 정당화할 방법을 찾으려고 애쓰는 중인 거 알아.
상상력이라곤 전혀 없는 당신이... 내가 질투한다고 생각해?
맞아, 질투해. 하지만 당신 때문은 아냐.
내가 보고 싶은 건 내 아들이야. 그 애를 잃어버리는 중이니까.
사랑하는 내 아들. 내 기쁨. 당신, 난 당신을 이미 잃어버렸어.
몇 년 전부터. 그러니 그 계집년들한테 가...
어쨌든, 난 이미 완전히 혼자야.
난 완전히 속았어.
(아버지가 돌아온다.)
아버지
무슨 말 했어?
-1막 1장, 2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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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앙 젤레르는 한 인터뷰에서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으로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내 가정, 내 자식 돌보느라 바빠서 어머니를 등한시했던 거죠. 그렇다고 <어머니>가 "후회 말고 어머니께 잘하라"는 메시지를 강조하는 작품은 아닙니다.
메시지 대신 젤레르는 극적 서스펜스에 집중했습니다. 독자(관객)의 마음에 의심의 씨앗을 뿌리고, 독자(관객)를 혼란에 빠트리고, 실제인지 가상인지 모를 장면들 속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추리하며 "연극적 유희"에 빠져들게 합니다.
<아버지>에서는 주인공 앙드레가 '치매'로 기억이 엉키면서 서스펜스가 형성됩니다. <어머니>에선 안느의 심리적 불안이 극적 긴장을 유발하는 요인입니다.
남편에 대한 의심, 아들에 대한 집착, 아들의 여자친구에 대한 증오.
안느(어머니)의 이런 심리적 불안은 '빈둥지증후군'으로 설명이 됩니다.
빈둥지증후군 : 중년에 이른 가정주부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회의를 품게 되는 심리적 현상. 마치 텅 빈 둥지를 지키고 있는 것 같은 허전함을 느껴 정신적 위기에 빠지는 일을 말한다. -표준국어대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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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홉킨스는 <더 파더>에서 치매로 혼란을 겪는 노년의 아버지를 훌륭하게 연기했습니다. <어머니>에선 이자벨 위페르(Isabelle Huppert, 1953~)가 신경증적 중년 여성을 완벽하게 재현합니다.
2019년 애틀랜틱 시어터 제작, 이자벨 위페르 주연 <The Mother>에 대한 매릴린 스태시오(Marilyn Stasio)의 리뷰를 가져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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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벨 위페르의 강렬한 연기가 돋보였던 <어머니>는 프랑스 극작가 플로리앙 젤레러의 “가족 해체”라는 주제가 한 발 나아간 작품입니다. 첫 장면은 관객이 극 중 부부의 결혼 생활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전달합니다. 세련된 검은색 치마, 달라붙는 상의를 입은 매력적인 ‘어머니’(이자벨 위페르)는 길이가 30피트나 되는 멋진 흰색 소파 끝에 앉아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읽는 척하는 걸지도.)
(↓<The Mother> 공연 장면. 이자벨 위페르가 '어머니'를 연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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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녀의 정신은 딴 데 팔려 있습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남편이죠. 남편은 빈 방의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들락날락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녀의 분노는 프렌치 스타일입니다. 쿨해 보이지만 속은 새카맣게 탑니다. 그녀는 앉아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생각에 잠깁니다. 그리고 기다립니다.
남편이 드디어 긴 흰색 소파 맨 끝에 자리를 잡습니다. 노련한 무대감독 트립 쿨먼이 이 소파를 선택했습니다. 소파에 앉은 남편과 아내 사이의 거리가 부부의 상태를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남편이 자리를 잡고 앉자 그녀는 무심한 듯 날카로운 질문으로 그를 발가벗깁니다. 아마 남편에게 수백 번도 더 물었을 오래된 질문들입니다. 위페르의 질문 하나하나에 독이 있습니다. “오늘 하루 어땠어?”(비소), “어디 있었어?”(스크리트닌), “별일 없었어?”(보툴리눔), “세미나 준비하는 거야?”(테트로도톡신), “내일 아침에 떠나는 거야?”(다이메틸수은).
어떤 땐 남편에게 독을 소진하고는 부재중인 아들로 상대를 바꿉니다. 아들은 절대 그녀를 찾아오지 않습니다. 전화도 하지 않습니다. 저녁 먹으러 들르지도 않습니다. “그 앤 날 없는 사람 취급한다니까.” 가장 참을 수 없는 건 아들의 여자 친구입니다. 그녀는 아들의 여자 친구를 경멸합니다.
그녀가 불평을 늘어놓을 때, '어머니'는 마치 집안의 괴물인 듯 보입니다. 공정하게 말해 어머니의 불만은 정당합니다. 이유 없이 소외되었으니까요. “난 집에만 있어. 아무것도 안 해. 기다렸지.” 하지만 위페르가 이 신랄한 대사를 무자비하게 읽어 내기 때문에 그녀에게 동정심이 생기진 않죠.
그녀가 분노를 자신에게 돌리고 점점 더 동요하면서 자멸해 가기 시작하면 상황은 반전됩니다. 위페르는 온몸을 사용한 신체 연기에 스스로를 맡깁니다. 그렇게 내면의 악마들을 모두 끄집어 내는 불행한 여성을 연기하는 거죠. 가구 위에서 뒹굴고, 바닥에서 몸부림치고. 남편에 대한 분노, 아들에 대한 오이디푸스적 감정, 자기 혐오를 드러내기 위해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몸을 벌합니다.
'어머니'의 붕괴는 젤레르가 <아버지>에서 묘사한 것과는 정반대입니다. 아버지는 지적 능력 상실로 천천히 가장으로서 정체성을 잃어 갑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어머니는 상실보다는 남편의 배신, 아들의 독립, 그리고 결국 풀려 버린 자신의 속마음, 그렇게 새로 알게 된 것과 번뜩이는 통찰력의 축적 때문에 파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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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2016년 국립극단 제작, 윤소정 배우 주연으로 초연되었습니다. 박근형 배우가 주연을 맡은 <아버지>와 나란히 공연되어 화제였습니다. 번역을 맡은 임혜경 숙명여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님이 작품을 해설해 주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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