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주의⁉️ 저희가 다~알려드릴게요😉 📖 차례 📖
1. 표현주의 등장, 시작은 미술에서
2. 유행은 독일에서
3. 주제는 저항에서
4. 특징은 "표현"에서
5. 영향은 반사실주의에서
6. 마무리는 여기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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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사에서 표현주의는 딱 15년, 특히 독일에서 유행한 사조입니다. 1차 세계대전 직후 이 끔찍한 전쟁을 유발한 모든 것을 철저히 타파하고 개혁하고자 했습니다. 전통, 시민정신, 정치, 예술 등 모든 게 개혁 대상이었습니다. 절규에 가까웠던 이 문학 예술 운동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참혹한 전쟁 직후 흥분 속에 인간 개혁을 부르짖던 표현주의가 사그라들고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합니다. 표현주의는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걸까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후대 연극과 영화에 표현주의가 미친 영향은 대단합니다.
표현주의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 합니다.
"지금껏 어떤 시대가 이처럼 전율에 휩싸이고 죽음의 공포와 싸워야 했나? 세계가 이처럼 무덤의 침묵에 휩싸인 적은 없었다. 인간이 이처럼 작은 존재였던 적도 없었다. 인간이 이처럼 불안에 떨었던 적도 없었다. 평화가 이처럼 멀고, 자유가 이처럼 억압되었던 적도 없다. 그곳에서 이제 고뇌가 소리친다. 인간은 영혼을 희구하며 울부짖는다. 시대 전체가 오직 하나의 고뇌를 외친다. 예술도 함께 절규한다. 캄캄한 암흑을 향해, 구원을 요청하며, 정신을 요구하며 절규한다. 이것이 표현주의다."
-헤르만 바르(Hermann Bah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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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50년대 다소 야단스러워 보이는 새로운 경향의 회화를 지칭하기 위한 용어가 필요했습니다.
- 1901년 프랑스 화가 오귀스트 에르베가 처음 '표현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 인상주의와 고흐, 마티스를 구별하기 위한 용어였습니다.
- 대체로 “자기 자신을 힘 있게 표현하기 위해, 본 것을 그대로 그리는 것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표현주의 화가들은 본 것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 경험, 생각, 관점을 담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사실주의 양식을 거부한 거죠.
- 초기 표현주의자들은 단순히 세계에 반항하는 태도로 격하게, 때로는 괴팍하게 주관을 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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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주의는 1910-1920년대 독일에서 특히 각광받았습니다. '열풍'이라 해도 좋을 정도였습니다.
- 게오르크 뷔히너, 프랑크 베데킨트에게서 표현주의 드라마의 선구적 경향성이 발견됩니다. (스웨덴 극작가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에게서도..)
- 표현주의 드라마는 게오르크 카이저, 에른스트 톨러에 이르러 성숙 단계에 듭니다. 기법과 정신이 다듬어졌는데, 특히 카이저의 <아침부터 자정까지>는 드라마 형식을 혁신하며 본격 표현주의 드라마의 등장을 알립니다. 이들의 경향이 체코의 카릴 차페크, 미국의 숀 오케이시와 유진 오닐에게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표현주의 스타일이 두드러지는 유진 오닐의 <황제 존스>는 브로드웨이에서 기록적인 성공을 거두며 신인 오닐을 일약 스타 작가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 현대 서사극 출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 막스 프리슈,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극작에서 표현주의 영향이 이어집니다.
- 영화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1919), <메트로폴 리스>(1926) 외에도 팀 버튼 감독 영화들이 표현주의를 표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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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주의는 기존의 모든 것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 1차 세계대전을 초래한 가족 제도, 관료 제도의 권위와 완고한 사회 질서, 종국적으로는 산업사회, 삶의 기계화에 대한 도전으로 탄생했습니다.
- 특히 프랑크 베데킨트의 <눈뜨는 봄>(1891)은 사춘기 청소년의 섹스, 임신, 낙태를 다룬 도발적인 작품으로, 학교, 종교, 가부장제의 권위에 도전하며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 니체의 초인 사상이 더해져 표현주의는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인간상을 이상화하게 됩니다.
- 프로이트와 융에 의해 정신분석학이 체계화되면서 인간은 무의식, 감춰져 있던 심적 상황을 펼쳐내도록 자극받습니다.
- 오스트리아 극작가 아르놀트 브로넨의 <부친 살해(Vatermord)>(1922)가 선풍적인 인기를 끕니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사랑을 나눈 현대판 오이디푸스 이야기입니다. 희곡의 주인공은 새로운 반항의 상징으로 부상합니다.
- 프로이트 이론의 다소 조악한 극화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 보이는 것보다 느낀 것을 표현하는 데 주력합니다.
- 1차 세계대전 이후 표현주의의 관심은 개인에서 사회로 이동합니다. 사회 참여적 표현주의는 ‘새로운 인간‘, ‘변혁’, ‘변화’, ‘행동’을 강령으로 합니다.
- "현실을 직시하라, 잘못된 현실과 싸워라" 이게 바로 표현주의의 구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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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주의 드라마에는 몇 가지 양식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 극의 분위기는 꿈, 특히 악몽과 같습니다. 그림자가 드리운 비사실적인 조명, 무대장치의 시각적인 변형으로 이런 분위기를 강조합니다. 침묵과 휴지가 비정상적일 정도로 길게 유지되면서 꿈 같은 효과를 극대화합니다.
- 자연주의 연극이 지향하는 사실적이고 세부적인 묘사를 거부합니다. 극의 주제에 초점을 맞춰 극도로 단순한 이미지를 구현합니다. 뒤틀린 형태, 선정적인 색을 이용한 장식을 즐겨 사용합니다.
- 극은 독립된 에피소드, 사건, 극적 장면으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잘 만들어진 극(well-made play)'이 갖고 있는 극적 갈등 대신, 작가의 대변자인 몽상가의 길고 긴 대사가 강조됩니다. 이런 구성은 브레히트의 서사극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다만 표현주의 드라마는 관객의 감정 격발을 유도하는 반면 서사극은 관객에게 지적 자극을 주기 위해 이런 구성을 취합니다.
- 인물들은 개성이 제거된, 무명의 ‘남자’, ‘아버지’, ‘아들’, ‘노동자’, ‘기술자’ 등으로 지칭됩니다. 특정 사회 집단을 대표하는, 유형화된 인물들로, 대개 풍자적으로 묘사됩니다. 개성을 제거한 인물들 때문에 극의 분위기는 더 그로테스크하고 비현실적으로 보입니다. 그 결과 연극의 ‘일차적 상징으로서 가면'이 무대에 재등장하게 됩니다.
- ‘대사’는 시적이고 열정적입니다. 서정적인 독백이 장황하게 이어지다가도 한두 단어, 혹은 감탄사만으로 이루어진 전보문 형식을 취하기도 합니다. 표현주의 드라마의 대사는 관객의 직접적인 공감을 겨냥합니다.
- 연기 양식은 스타니슬랍스키의 사실주의 스타일에서 완전히 벗어납니다. 배우들은 과장된 연기로 마치 인형 또는 기계 같은 움직임을 보여 줍니다.
(J. A. 스타이언 <<표현주의와 서사극>>, pp.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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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주의의 역사는 짧습니다. 하지만 후대 연극과 영화에 미친 영향은 컸습니다.
- 표현주의 드라마는 새로운 극작을 통해 변혁을 시도했습니다.
- 조명, 무대, 의상 등 시각적 요소들에 과감한 도전과 변혁이 이루어져 표현의 영역이 확장되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 반사실주의 연극 운동의 초석이 됩니다.
- 연극이 본격적으로 인간의 정신, 내면, 심리 등 주관적인 영역을 다루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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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주의는 1차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전쟁을 겪으며 완전히 새로운 사회, 변혁을 기치로 출발한 문예 사조입니다. 나치 집권기에 표현주의는 와해되기 시작합니다. '퇴폐 예술'로 분류되어 박해받았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작가들이 해외로 망명하거나 자살하거나 수용소에서 고문당하거나 살해당했습니다.
표현주의에 대한 평가는 논쟁적으로 갈립니다.
클라우스 만은 반동적이고 파시즘적 성격을 띤 운동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반면 에른스트 블로흐는 전위적이고 현대적인 예술 운동으로서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개척의 힘을 지녔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루카치는 "미학적 구출은 오직 리얼리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며 반사실주의로 나아간 표현주의를 비판했습니다.
브레히트는 루카치의 리얼리즘론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며 비투쟁적이라고 단정하면서 작가와 독자, 표현과 수용의 과정을 중요한 현실 카테고리로 상정해 예술의 사회적 기능과 실천을 강조했습니다.
표현주의의 시작은 현실 직시와 통찰, 반성, 뼈를 깎는 변혁 의지였습니다. 실패한 것은 표현주의가 아니라 현실을 바로 보지 않고 꿈속만 헤매며 절규한 사이비 표현주의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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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스 만(Klaus Mann, 1906-1949) : 독일의 소설가. 극작가. 나치 집권 이후 네덜란드로 망명해(1933) 암스테르담에서 <메피스토>(1935)를 출판했다. <마의 산>을 쓴 토마스 만의 아들이다.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 1885-1977) : 베냐민, 아도르노와 함께 새로운 좌익의 정신적 지주였다. ≪이 시대의 유산≫, ≪유토피아의 정신≫ 등을 썼다.
죄르지 루카치(György Lukács, 1885-1971) : 헝가리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문학사가(文學史家).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막스 베버에게 사사했다. 이후 사상적 전환기를 거쳐 1918년 공산당에 입당했다. 후에 미학 연구에 전념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 : 독일의 극작가, 시인. <서푼짜리 오페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1933년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2차 세계대전 후 귀국해 서사극, 생소화 효과 같은 독자적 연극론과 그 실천 운동을 주창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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