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알고 싶은 게 그거지? 그래, 섹시했어. 바닷가에서 있었던 일 말야. 내가 애였을 때. 얘기했잖아...
(사이. 심한 정서적 불안을 겪고 있다. 다이사트, 진료 파일을 들고 왼쪽 벤치에 앉아 듣는다. 앨런, 일어나 다이사트 바로 뒤 원형 플랫폼에 와서 선다. 이어지는 대사를 녹음하는 것처럼 말한다. 물론 다이사트를 직접 쳐다보지는 않는다.)
말 등에 올라타자 앞쪽으로 바짝 붙어야 했어. 말 목덜미에서 흘러내리는 땀이 내 다리를 적셨어. 그 사람은 날 꽉 붙들고는 나한테 고삐를 쥐여 주고 내 마음대로 말 머리를 돌리게 했어. 그 힘센 동물을 내가 원하는 대로 몰 수 있다니… 말 옆구리는 아주 따스했어, 그리고 그 냄새는… 그러다 갑자기 땅에 떨어진 거야, 아빠가 끌어내려서. 때려 주고 싶었어, 아빨…
(사이.)
또 기억나는 게 있어. 말이 처음 나타났을 때, 올려다보니 입안이 들여다보였어. 커다란 입이 벌어져 있었는데, 그 안에 쇠로 만든 재갈이 물려 있었어. 그 사람이 그걸 당기면 입안에 하얀 거품이 고이면서 뚝뚝 떨어지는 거야. 내가 물었지, ‘아파?’ 그랬더니 그가 말했어 − 말이 말했다구 − 그가 말하길 −
(괴로워하면서 멈춘다. 다이사트, 진료 파일에 노트한다.)
(절박하게) 그 일이 있고 난 후, 매번 똑같았어.
토가닥토가닥, 말이 지나는 소릴 들으면 달려 나가 내 눈으로 봐야만 했어. 그게 시골길이든 어디든. 말들이 날 잡아끄는 것 같았어. 말들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 그 미끈한 가죽에 눈이 갔어. 이리저리 목을 비트는 모습, 움푹 팬 근육의 골 사이로 빛을 내며 흐르는 땀방울… (사이)
어떻게 시작된 건지는 모르겠어.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 한 소년 외에는 아무도 탈 수 없었던 말 프린스 이야기 때문인지. 아니면 계시록에 나오는 백마 이야기, ‘보라 백마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실과 진실이라. 그 눈은 불꽃같고 그 이름은 자신밖에 아는 자가 없었더라’ … ‘고삐’, ‘등자’, 그런 말들을 들으면 흥분됐어.
‘옆구리’라는 말도 … ‘쇠로 된 박차로 말 옆구리를 차고 또 차면서 거침없이 달려갔노라!’ − 이런 말들을 입에 올리기만 해도 벅찬 느낌이었어. 하지만 누구한테도 말한 적은 없어. 엄만 이해 못할 거야. 엄만 ‘에퀴테이션’이나 좋아하니까. 보울러 모자와 승마 바지 따위나 좋아하니까!
엄만 말하지, ‘이 엄마의 할아버지께서는 승마를 위해 멋지게 차려입으셨단다’. 그래서 어쨌다고? 말은 옷 따윈 입지 않아. 말은 이 세상 무엇보다도 완전하게 발가벗은 존재야! 개나 고양이나 그 어떤 것보다도. 늙어서 지쳐 빠진 말에게도 생명이 있어! 그 말한테 체면치레하는 보울러 모자 따윌 씌우는 건 더러운 짓이야! …
마음대로 달리지도 못하게 하고 잔재주나 부리게 해! 그 빌어먹을 놈의 마술 시합은! 아무도 이해 못해!…
카우보이 말고는. 카우보이는 알아. 나도 카우보이면 좋겠어. 그들은 자유로워.
말을 한 번 올라탔다 하면 끝없이 펼쳐진 대평원을 내달리는 거야…
카우보이는 모두 고아들일 거야!… 틀림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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