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죄인이고 너희들은 죄가 아닌가 말이다!😠 꿈 하늘 차범석, 1987년 발표.
개요 신채호의 내적 갈등을 가시화한 작품. 줄거리 신채호가 상경하고 중국으로 망명해 활동하다가 만주 대련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여순 감옥에 수감되기까지 일대기를 그렸다. 등장인물 남 12 / 여 2 배경 서울 삼청동 신채호의 셋방 외 장과 막 17장 공연 시간 1시간 30분 주제어 역사적 인물 / 내면갈등 / 국립극단 |
<꿈 하늘>은 신채호가 임종한 시점부터 시간을 역행하며 그의 일대기를 보여 준 다음 다시 죽음에 이르는 ‘현재-과거-현재’ 플롯을 취합니다. 이와 함께 신채호라는 한 인물을 신채호 1, 신채호 2, 신채호 3과 같이 세 분신으로 나누고, 서로가 분신임을 알아보게 하는 기법을 활용했습니다. 이들은 각각 신채호의 청년, 장년, 중년을 대표하는 자아인 동시에 신채호의 내면을 구성하는 다양한 면모를 상징합니다. 또 이들은 신채호의 활약 가운데 무대화하지 않은 사건을 요약해 관객에게 설명하는 해설자 역할을 함으로써 불연속적인 장면을 연결하고 장면 사이의 개연성을 마련해 줍니다. 이처럼 한 무대에 신채호의 여러 내면을 상징하는 다수의 분신을 한꺼번에 등장시켜 신채호의 내면 갈등을 가시화한 것이 특징입니다.
인용한 대사는 '장면 15'에 나옵니다.
"1930년 4월 28일 만주 대련 법정", 어두운 무대에 미결수복을 입은 신채호가 용수를 쓴 채 앉아 있습니다. 법관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간수가 나와 신채호에게서 용수를 벗깁니다. "치안유지법 위반, 유가 증권 위조 및 사기, 살인 및 시체 유기에 관한 제4회 공판"에서 재판장은 신채호에게 동방연맹 자금 조달 목적으로 위조 채권을 발행한 사실을 인정하는지 묻습니다. |
신채호
(당당하게) 내가 동방연맹에 가담한 목적은 사리사욕도 아니고 공명심도 아니었다. 오직 일본의 제국주의에 대한 반발이요 침략주의에 대한 투쟁이었으며 그것은 우리 조선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오! 왜 약소민족의 피와 고기가 아니면 굶어 죽을 일본 강도를 박멸하려는 우리는 죄인이고 너희들은 죄가 아닌가 말이다! 백 보를 양보해서 소수가 다수에게 지는 것이 원칙이라면 어디 물어보자! 이 지구상에서 어느 편이 다수인가 말해 봐! 대다수의 민족들이 최소수의 야수적 강도들에게 피를 빨리우고 고기를 찢기우는 것이 정상적인가 말해 봐! 이의 있으면 말해 봐!
-차범석의 <꿈 하늘> 76쪽, 신채호 대사 |
단재 신채호(1880-1936)는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 사학자, 언론인으로 활약했습니다. 임시정부 수립에 참가했으나 국제 연맹에 의한 대한민국의 위임 통치를 주장했던 이승만과 대립하며 임시정부 해체를 주장했던 장본인입니다. 임시정부 존폐 문제를 놓고 안창호 등과 논의했으나 결렬되자 임시정부를 탈퇴합니다.
러시아혁명(1917)과 3.1운동(1919)에서 민중의 힘을 목격한 뒤 1925년 무렵부터는 본격적으로 무정부주의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1927년 신간회를 열고, 무정부주의 동방동맹에 가입했습니다. 1928년 동지들과 합의해 외국 채권을 입수, 타이완으로 가던 중 체포되어 10년 형을 선고받고 뤼순 감옥에 수감됩니다. 1936년 옥사했습니다. 지도자에 의한 독립이 아니라 민중에 의한 독립을 주장했습니다.
신채호는 빈부격차와 계급이 없는 대동사회를 꿈꾸었던 아나키스트였지만, 역사 교과서는 민족주의자의 면모를 부각해 왔습니다. 차범석 작가는 <꿈 하늘>에서 청년, 중년, 장년의 신채호를 균형감 있게 조명하며 신채호란 인물 전체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줍니다. |
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귀향>이 당선되어 등단했습니다. 이후 50여 년간 <불모지>(1958), <산불>(1962), <환상 여행>(1972), <꿈 하늘>(1987) 등의 작품을 썼습니다. 1963년부터 20년간 극단 산하를 이끌며 한국 현대극 정착에 힘썼습니다. 전쟁 직후 등단해 초기에는 전쟁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문명화로 인한 인간성 상실, 애욕의 갈등, 정치 비리 등으로 주제의 폭을 확장해 갑니다. 한국적 사실주의 연극을 완성한 작가입니다. 2006년 작가가 돌아가시고 출범한 차범석연극재단은 ‘차범석희곡상’을 제정해 이듬해부터 매년 11월 수상자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응모작과 한 해 동안 공연된 창작극을 포괄해 심사하는데, 동랑희곡상과 함께 희곡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꼽힙니다. 김명화 작가의 <침향>(2007), 정경진 작가의 <푸르른 날에>(2009), 배삼식 작가의 <먼 데서 오는 여자>(2014), 장우재 작가의 <햇빛샤워>(2015), 고연옥 작가의 <손님들>(2017) 등이 차범석희곡상을 수상했습니다.
한국 연극사에 큰 족적을 남긴 차범석 작가의 작품 중에는 연극을 모르는 사람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작품이 하나 있습니다. 드라마 <전원일기>인데요, 1980년부터 2002년까지 총 1088회에 걸쳐 한국 농촌 사회의 현실을 그린 작품입니다. 20년 넘는 시간 동안 여러 작가와 연출이 이 작품을 거쳐 갔습니다. 차범석 작가는 <전원일기> 초창기 극본을 집필했다고 해요. 얼마 전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고두심 배우가 차범석 작가의 생가를 찾아 촬영장에서 만난 차범석 작가를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
작가가 나고 자란 목포에는 지난 2020년 ‘차범석 작은 도서관’이 개관되었습니다. 차범석 생가 터에 마련된 이 공간에서는 작가의 전체 작품과 함께 목포 출신 작가의 문학 서적 등도 비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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