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에 대하여📽️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 생강의 영화 이야기와 함께 읽어 볼 희곡 소개를 전합니다.
다큐멘터리는 실제 사건을 사실적으로 담은 영상이나 기록물을 말합니다. "사실적"이라니, 사실 자체는 아닌 게 확실합니다.
이번 호에선 왕빙의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다룹니다. 함께 읽어 볼 희곡으로 하이나어 키파르트의 <오펜하이머 청문회>를 추천합니다.
영화가, 연극이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려 극장에 사실을 소환한 이유가 분명 있을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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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바쟁(Andre Bazin)은 일찍이 영화의 욕망이 사실적 표현을 중심으로 하는 리얼리즘에 뿌리를 둔다고 주장했다. 특히 다큐멘터리 영화는 픽션과 달리 현실 세계 자체를 재료로 삼는다는 점에서 리얼리즘에 기초한다. 그러나 다큐멘터리가 언제나 ‘모방’을 통해 리얼리티를 획득한 것은 아니다. 최초의 다큐멘터리 이론가 존 그리어슨(John Grierson)은 다큐멘터리를 “실재의 창조적 처리”라고 정의한다. 영상 언어가 현실을 재구성하고 원하는 의미로 만들어 내는 능력에 주목한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현실 자체의 묘사(리얼리즘)인가, 아니면 역동적인 드라마를 만들기 위한 수단(구성주의)인가? 이 딜레마 앞에서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은 리얼리즘과 구성주의 모두 다큐멘터리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본다. 슈타이얼에게 다큐멘터리의 본질은 “다큐멘터리의 진실이 가능한지 아닌지, 또는 그것이 처음부터 배척되어야 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지속적인 불확실성,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실재와 일치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지속적인 회의”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디지털 이미지, 즉 ‘빈곤한 이미지’든 고도의 편집을 거친 다큐멘터리 영상물이든 그 본질은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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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는다’는 것은 존재(存在)의 증명이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세상이 ‘비존재’로 규정한 것을 찍어 세상에 내놓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중국 다큐멘터리 감독 왕빙(王兵) 이야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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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물의 통일 법칙은 곧 우주의 근본 법칙이다. … [모순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적과 나의 모순이며, 다른 하나는 인민 내부의 모순이다. _마오쩌둥, “인민 내부의 모순에 대한 올바른 대처”(1957)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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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빙의 <사령혼(死靈魂)>(2018)은 1957년 반우파 투쟁에서 비존재로 규정된 이들을 존재로서 복권한다. 반우파 투쟁의 배경에는 마오쩌둥의 ‘모순론’이 있다. 마오쩌둥은 1957년 연설문 “인민 내부의 모순에 대한 올바른 대처”에서 인민 내부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단결-비판-단결”의 과정, 즉 ‘교육’을 제시한다. 그러나 <사령혼>에서 드러나듯 교육의 대상인 인민들은 강제 노역에 동원되어 대부분 현장에서 사망한다. 살아남은 자들 역시 자신이 교화되었음을 확언하는 연설을 하고 난 후 ‘모순 분자’라는 표식을 달고 다녀야 했다. ‘적’과 ‘인민’은 사실상 같은 방식으로 ‘처단’된다. 슬라보이 지제크는 마오쩌둥의 모순론이 “대립물의 영원한 투쟁”을 형식화함으로써 “경제적, 정치적 노력을 위해 인간이 희생되는 것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모순으로서 인민은 ‘역사’라는 공적 언어로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가 그들이 살아 있(었)다는 증거를 세상에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왕빙은 국가가 감춘 그들의 존재를 파헤친다. 국가의 언어와는 정반대 방식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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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혼>은 삶과 죽음을 현시(顯示)함으로써 사상 속 ‘모순’이 아닌 사상 밖 ‘존재’를 증명한다. <사령혼>은 반우파 투쟁이 어떤 운동이었는지, 그것이 어떻게 인민을 하나의 사상 아래 묶어 놓았는지에 관심이 없다. 왕빙은 대신 증언자들의 주름, 병듦, 그리고 황야에 버려진 사람의 뼈들을 이미지로 수집한다. 지제크의 ≪Absolute Recoil≫ 서문 제목이 “분명 여기에 뼈 하나가 있다(Certainly There is a Bone Here)”라는 사실이 의미심장해지는 순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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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혼>의 가장 충격적인 이미지 중 하나는 한때 자볜거우 강제 노역소가 있던 밍수이 벌판에 고스란히 드러난 뼛조각들이다. 핸드헬드로 촬영된 이 영상에는 크기로 어림잡아 사람의 것임이 분명한 뼛조각들이 나타난다. 강제 노역소에서 생존하지 못한 모순 분자의 흔적이다. 그들은 장례를 통해 애도받지 못한 익명의 분자들이다. 왜냐하면 중국 공산당은 공식적으로 반우파 투쟁의 희생자들에게 사과를 건넨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령혼> 속 생존자들이 증언하듯 “당은 자신들이 내린 결정에 대해 어떤 오류도 인정하지 않았다”.
뼈는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뼈를 찍은 왕빙은 말한다. 여기 익명의 뼈가 있다고. 왕빙은 거기서 더 나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왕빙은 더 나아가지 않음으로써 다큐멘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정치적인 의미를 획득한다. 애도받지 못한 인민의 생명이 여기 있다. 밍수이 벌판의 뼈는 곧 ‘존재’다. 이처럼 <사령혼>은 그 무엇도 부정하지 않은 채 모순론을 전면 부정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단 하나다. 왕빙이 벌판으로 카메라를 들고 갔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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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疯爱)>(2013)의 배경은 중국 윈난성의 한 정신병원이다. 영화가 끝나기 직전까지 왕빙은 병원에 있는 자들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이 줄을 서서 주사를 맞는 모습, 소변을 보는 모습, 모여서 텔레비전을 보는 모습 등을 보여 줄 뿐이다. 왕빙은 영화의 마지막 숏에 와서야 자막을 통해 수감자들이 크고 작은 범죄에 연루되었거나 정치적 이유, 성적 지향의 이유로 강제로 병원에 끌려온 사람들임을 알려 준다. 마지막 숏 전까지 영화 속 인물들은 ‘존재’하지만 ‘의미’하지 않았다. 현시된 그들의 삶은 <사령혼>의 뼈와 크게 다르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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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빙,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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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의 촬영 현장을 담은 정성일의 영화 <천당의 밤과 안개>(2015)는 왕빙의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잘 보여 준다. <천당의 밤과 안개>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왕빙이 피사체와 거리를 좁히고 현장에 적응하는 방식이다. 윈난의 정신병원에 도착한 왕빙은 아무 말 없이 햇볕이 내리쬐는 병원 복도를 걷다가 그곳에 놓인 한 의자에 앉아 낮잠을 청한다. 롱테이크로 촬영된 이 장면에서 왕빙을 둘러싼 많은 수감자들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데, 맨 처음 수감자들은 왕빙 일행을 신기하게 쳐다보지만 이내 편히 잠든 왕빙의 옆에서 평소대로 쉬거나 본래의 행동으로 돌아간다. 가장 놀라운 것은 이 장면 이후 왕빙이 수감자들에게 아무리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도 그들이 왕빙의 존재를 전혀 신경 쓰지 않거나, 자신들과 같이 생활하는 인물처럼 대한다는 것이다. 이 순간 왕빙의 다큐멘터리는 더 이상 리얼리즘이나 구성주의 같은 이론적 틀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된다. 그는 주체와 객체 사이에 객관적 거리를 만들지도, 주어진 상황을 조작하지도 않는다. 단지 영화가 만들어지는 곳에 ‘존재’한다. 해석은 오롯이 관객에게 맡긴 채 말이다. 왕빙은 이렇게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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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서 말하는 진실이란 절대적인 진실이 아니다. 내 생각에 예술에서 더 중요한 것은 감정의 진실이다. … 영화 속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진실은 당신의 마음에 와 닫는 진실이다. … 한 노파가 내 카메라 앞에 앉아서 세 시간 동안 수십 년 풍파 세월을 말할 때, 나는 그녀를 믿을 수 있다. 왜 내가, 도대체 어떤 이유로 그녀를 믿지 않아야 하는가? _정성일, <천당의 밤과 안개>: 00:13:40~00:14: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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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왕빙은 단순히 진실이 상대적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감정의 진실’이란 곧 영화 이미지에서 드러난 사물, 혹은 대상이 관객과 호응하는 공통적인 지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진실의 획득은 외적 사물에 대한 부정이 아닌 오직 사물 자체의 긍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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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 <천당의 밤과 안개> 중에서. 왕빙의 카메라는 수감자들 삶을 방해하지 않고 그 공간에 뿌리내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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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빙의 영화는 의식적으로 파악 가능한 인과관계를 배제하고 존재하는 몸을 찍는 데서 시작한다. 그 몸들에서 왕빙이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삶에 대한 의지, 곧 ‘코나투스’다. 코나투스라는 존재 일반에 통용되는 개념을 통해 왕빙은 중국 사회가 비가시화한 자들을 우리와 나란히 세우고 그들의 존재를 증명한다. 그래서 왕빙의 영화는 중국의 정책을 비판하거나, 현실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가질 것을 요구하는 정치적인 텍스트가 아니다. 오히려 왕빙의 영화는 모든 종류의 구별을 거부하는 ‘일의성의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천당의 밤과 안개> 한 장면을 보자. 윈난성 정신병원 촬영 협조를 거절당한 직후, 한 스태프가 왕빙에게 말한다. “예전에 네가 <철서구>*를 촬영했을 때, 촬영 끝난 뒤에 만약 그 영화가 없었다면 그 사건 자체가 없었던 게 될 수도 있었을 거야. 사람들이 없었던 일이라고 말하면 존재한 적이 없게 되는 거지.” 이에 왕빙은 답한다. “촬영 못 하게 하면 촬영 못 하는 거지.” 하지만 왕빙은 몇 번의 시도 끝에 정신병원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역사가 비존재로 명명한 것을 존재로서 현시했다. 그곳을 담아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결코 정치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영화를 찍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에 대한 왕빙의 말을 옮기며 마무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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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인생은 같은 패턴으로 움직이고 같은 방향으로 흐른다. 견디기 힘든 현실을 목도하면 나 역시 다른 중국인들과 마찬가지로 힘겨운 감정을 느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 자체가 하나의 운동이다. 나는 영화감독이지 사회운동가가 아니다. 따라서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행동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_이정훈(2017), “[인터뷰] 왕빙”. ≪미술세계≫, 58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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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서구(鐵西區)>(2003)는 러닝타임 9시간 16분에 달하는 왕빙의 장편 다큐멘터리 데뷔작이다. 100만 명 넘는 노동자가 일하던 철서공업지구의 쇠퇴와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힘든 삶을 건조하게 조명한다. 이 영화 역시 별도의 설명 없이 철서구 상공에서 바라본 풍경을 롱쇼트로 제시하며 시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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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커뮤니케이션북스 편집자. 하루에 여덟 시간은 활자를 편집하지만 그 외 시간에는 영화의 힘을 긍정하고 쓰기를 즐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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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나어 키파르트는 에르빈 피스카토어와 더불어 독일 기록극(다큐멘터리극)의 융성을 이룬 극작가입니다. 나치 치하에서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목격한 키파르트는 전후 독일 정세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전쟁 시기 비참하고 끔찍했던 삶이 너무나 빠르게 잊히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키파르트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지닌 연극인들 중심으로 기록극이 활발히 제작되었습니다. 관객을 정치적 무대로 끌어들이고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펜하이머 청문회>는 키파르트의 기록극 가운데 가장 성공한 작품입니다. 3000매에 달하는 공식 문건과 역사 기록을 “가능한 한 사실에 충실하게” 재구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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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ter Dreieck 제작(2018). 하이나어 키파르트의 <오펜하이머 청문회>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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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극은 표현주의 드라마만큼이나 전후 독일에서 짧은 기간 대세를 형성한 장르입니다. 그 배경에는 전쟁이 있었습니다. 특히 기록극은 도저히 인정하기 힘든 과오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의 일환이었습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생각합니다. “설정이 너무 과한 거 아냐?”
시사 다큐를 보면서 생각합니다. “드라마도 저런 설정은 못 하겠다!”
어쩌면 완전한 행복과 불행을 믿기 힘든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환상이든 현실이든.
“차라리 모든 게 꿈이라면...” 그런 날들의 연속입니다. 어서 이 모든 불행이 그치길, 악몽에서 깨어나 다시 마주할 삶은 부디 빛나는 꿈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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