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맞아, 시의 날을 맞아🌸
지루하게 이어지던 겨울 한기가 걷히는 듯합니다. 메마른 가지에서 잎눈이 트는 것만큼 드라마틱한 순간도 없을 겁니다.
봄을 맞아 그리고 시의 날을 맞아 봄 시를 소개합니다.
시를 이루는 음악과 언어가 연극에도 무한한 영감을 제공합니다. 그럴 수밖에요. 애초에 드라마는 노래고 시였으니까요.
*원문을 적절히 편집했습니다. |
|
|
봄 Spring
- 제러드 맨리 홉킨스(Gerard Manley Hopkins, 1844-1889)
|
|
|
제러드 맨리 홉킨스의 〈봄〉은 “봄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로 시작합니다.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다면 아마 이 시일 것입니다. 이 시는 황홀하고 도취된 감정으로 가득합니다. “유리처럼 반짝이는 배나무 잎과 꽃, 내려앉는 푸름을 살짝 스치네. 그 푸름은 갑자기 풍성하게 넘쳐흐르고, 달리는 새끼 양들도 봄의 들뜬 기운에 취해 날뛴다네.” 봄 아침, 이 시를 낭송하면 봄이 더욱 선명하게, 더욱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심지어 새끼 양들도 잔치를 벌였나 봅니다. ‘유리처럼(glassy)’이라는 단어 하나가 문장을 환히 밝혀 그 빛으로 뜻밖의 환각 같은 리듬을 만들어 냅니다. |
|
|
차가운 봄 A Cold Spring
- 엘리자베스 비숍(Elizabeth Bishop, 1911-1979)
|
|
|
엘리자베스 비숍의 시는 홉킨스에게 바치는 오마주입니다. 차분하게 시작합니다. 홉킨스가 황홀하다면, 그녀는 냉철합니다. “차가운 봄 제비꽃은 잔디밭 위에 상처 입은 듯 피었네.” 그녀는 조심스럽게 관찰하듯, 송아지가 태어나고 어미 소가 태반을 먹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섣부른 환희를 경계하면서 현실의 목소리를 잊지 않습니다. 시의 흐름은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조심스럽고 실험적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다 마침내 봄을 향한 건배를 허락합니다. 반딧불이의 비행을 “샴페인의 거품”에 비유하며 말이지요.
|
|
|
황무지 The Waste Land
- T. S. 엘리엇(T.S. Eliot, 1888-1965)
|
|
|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틔우고, 기억과 욕망을 섞어, 지루한 뿌리를 봄비로 휘젓는다.” T.S. 엘리엇은 봄을 노래하는 자들 사이에서 가장 단호한 목소리를 냅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구절은 빈번하게 인용되는 시구 중 하나죠. 불편할 만큼 대담하지만, 왠지 그 말이 진실 같아 마음이 아립니다.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어쩌면 고통을 되살리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자살률도 봄, 특히 늦봄에 가장 높다죠. 잠들어 있는 뿌리는 그대로 두는 게 좋을지도요. |
|
|
오늘 Today
- 빌리 콜린스(Billy Collins, 1941-)
|
|
|
콜린스의 시는 한 문장으로 된 기쁨의 한숨 같습니다. “언젠가 완벽한 봄날이 있다면…”으로 시작하죠. “거실 구석 탁자 위 유리 문진을 망치로 내려치면 눈 덮인 오두막에서 그 조그마한 이들이 풀려나겠지요.” 여기엔 참으로 사랑스러운 장난기가 깃들어 있습니다. 봄날 거실이라는 작은 왕국에서 스스로 조그만 신이 된 듯한 기분 말이지요. 눈 덮인 돔 속에 갇혀 있던 작은 이들이 이제 밖으로 걸어 나옵니다. “서로 손을 맞잡고, 푸르고 하얀 더 큰 하늘의 돔을 향해 눈을 가늘게 뜨며” 그리하여 이 재치 있고 자유로운 시는 처음 시작한 꿈을 끝내 완성합니다. |
|
|
나무들 The Trees
- 필립 라킨(Philip Larkin, 1922-1985)
|
|
|
라킨에게 봄은 재생이자 고통입니다. “나무는 잎을 틔운다 무슨 말인가를 거의 내뱉을 듯 갓 틔운 봉오리, 느긋이 펴지면 그 푸름은 어딘가 슬픔을 닮았다.” 이 시를 읽으면 마음이 저릿해집니다. 나무들이 해내는 일을 우리 인간은 온전히 따라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가로막는 그 ‘거의(almost)’라는 말− 봄마다 되풀이되는 낙관에 기꺼이 동참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나무들 사이 바람 소리는 조용히 속삭입니다— “다시 시작해, 다시, 또다시.” |
|
|
아, 그대가 저 라일락이라면 O were my Love yon Lilac fair
- 로버트 번스(Robert Burns, 1759-1796)
|
|
|
슬픔도, 환멸도 없는 이에게 봄은 예나 지금이나 사랑의 계절입니다. 로버트 번스의 봄 시에서 사랑하는 여인은 라일락이 되었다가, 이내 장미가 됩니다. 그리고 그는 장난스레 자신을 그 꽃잎 속에 깃든 새로 그려 냅니다. “지친 내 작은 날개 위에 기대어” 힘겨운 구애를 이어 가는 그의 모습이 참으로 사랑스럽습니다. 그 날개가 곧 방탕한 욕망으로 물드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지요. 봄날의 남자, 아니 어느 계절의 남자든 그를 마다할 수 있을까요? “봄날, 나는 당신 곁에 없었지요.” |
|
|
소네트 98 Sonnet 98
-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
|
|
|
셰익스피어는 소네트에서 봄을 그리움에 잠긴 연인의 마음으로 풀어냅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봄의 정수를 두 줄로 경쾌하게 압축합니다. “화려한 무늬의 4월이 온 세상을 단장하고 모든 것에 젊음의 숨결을 불어넣는다네” 그는 단호합니다— 봄이란 그저 대역 배우일 뿐, 진짜 주연은 사랑하는 그대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그래서 그는 우아하게 장미도 백합도 그대가 없으면 그저 그림자일 뿐이라고 말하죠. “그 꽃들은 달콤했지만, 그저 기쁨의 그림자였지요. 모두 당신을 본떠 그려 낸 모습일 뿐.” |
|
|
영원한 봄 속에서 In Perpetual Spring
- 에이미 거슬러(Amy Gerstler, 1956-)
|
|
|
이 시는 마치 대화 중간에서 시작되는 듯합니다. “정원은, 심통 부리기에도 좋은 곳이지요. 가시 돋친 부두 백합 사이를 지나며…” 봄은 그녀의 심통을 오래 붙잡아 두지 못합니다. 자연과의 뜻밖의 화해가 그녀를 감쌉니다. 그녀는 “잡초의 여왕”인 엉겅퀴마저 이 화해의 음악으로 초대합니다. 그녀는 농담조로 말합니다. 사자도 새끼 양과 포옹한다고. 하지만 시는 전체적으로 오히려 기도처럼 울립니다. “당신 마음속 은밀한 믿음, 영원한 봄에 대한 신념, 모든 상처엔 치유할 잎이 있다는 믿음.” |
|
|
새끼 양들 Young Lambs
- 존 클레어(John Clare, 1793-1864)
|
|
|
존 클레어는 자연 속에 파묻혀 살아간 시인이었습니다. 그의 시에 문학적 풍광은 없습니다. 그는 그 안에 살고 있습니다. <새끼 양들>이라는 시는 마치 농부가 들려주는 일상 같습니다. “봄이 오는 걸 여러 징후로 알 수 있다네.” 그는 자연주의자의 눈으로 울타리와 막 돋아난 미나리아재비를 살핍니다. 초봄, 꽃들은 바람이 덜 스치는 가장 아늑한 자리에서 피어난다는 것을 놓치지 않습니다. 막 태어난 새끼 양이 죽은 듯 누워 있습니다— 그건 마치 봄의 익살 같기도 합니다. 바로 그것이 이 시의 생명입니다. 클레어는 본 것을 있는 그대로 씁니다. “몸을 길게 뻗고 죽은 듯 누워, 가까이 다가가도 꼼짝 않네, 그저 햇살 속에 누운 채, 두 다리는 일어나지 못할 듯 곧게 뻗어 있네.” |
|
|
캔터베리 이야기 서문 The Prologue to The Canterbury Tales
-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 1343-1400)
|
|
|
“달콤한 4월의 소나기가 3월의 가뭄을 뿌리까지 적시면…” 6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초서의 봄은 생기가 넘칩니다. 그의 시는 봄의 발걸음처럼 경쾌합니다. “작은 새들이 선율을 만들고, 밤새 눈을 뜬 채 잠을 자지요.” 이 불안한 계절에 “사람들은 순례를 떠나고 싶어 한다” 초서는 말합니다. 당장 떠나지 않더라도, 눈을 뜨고, 기운을 내자고.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