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각색 10 👍 ‘고전’을 만나면 15년 차 희곡 편집자는 주눅이 듭니다. 언어는 낯설고 형식은 딱딱합니다. 그땐 관용으로 쓰던 표현이 지금은 영 어색합니다.
그런데도 어느 순간 무릎을 치게 됩니다. 지금, 여기 나의 고민과 작품 속 인물들의 고민이 맞닿을 때입니다.
셰익스피어 시대에 통했던 서사와 주제가 우리 시대 관객, 독자의 마음을 두드립니다. 모방이면서 독창인 최고의 각색을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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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금지된 세계 Forbidden Pl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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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Everett Collection/Rex Featur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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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버전의 훌륭한 <템페스트>가 있습니다. 폴 마주르스키의 〈템페스트〉는 로맨틱합니다. 건축가 필립(존 카사베츠)이 아내의 외도 사실에 실망해 딸과 그리스 섬으로 떠납니다. 피터 그리너웨이의 <프로스페로의 서재(Prospero’s Books)〉에선 존 길구드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독특하면서도 멋진 연출이 돋보입니다. 줄리 테이머의 <템페스트>에서는 헬렌 미렌이 프로스페라를 연기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각색은 SF 영화 <금지된 세계>입니다. <템페스트> 위에서 <멋진 신세계>와 프로이트가 만나 탄생한 이 작품은 서기 2200년을 배경으로 합니다. 프로스페로는 먼 행성에 갇힌 과학자 모비우스(월터 피전)로 변모했습니다. 아리엘은 그가 만든 로봇이죠. 캘리번은 그의 무의식이 투영된 악한 존재로 등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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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 悪い奴ほどよく眠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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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Everett Collection/Rex Featur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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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는 여러 차례 셰익스피어 작품을 각색했습니다. <맥베스>를 각색한 <거미의 성(The Castle Of The Spider's Web)>과 <리어 왕>을 현대화한 <란(Ran)>은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습니다. <햄릿> 현대판인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는 비교적 덜 유명하지만 앞에 언급한 작품들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햄릿 장사를 떠나다(Hamlet Goes Business)>(1987)나 마이클 알메레이다의 <햄릿>(2000)보다 뛰어납니다. 영화는 현대 도쿄를 배경으로 합니다. 구로사와의 페르소나인 미후네 도시로가 몇 년전 기업의 뇌물 스캔들을 잠재우기 위해 강제로 투신자살했던 어느 간부의 아들로 등장하죠. 그는 부패한 기업에 잠입해 아버지를 죽이고 권력을 장악한 자에게 복수하려 합니다. 오필리아 같은 여성을 아내로 맞이하고, 폴로니어스와 레어티스를 연상케 하는 인물들과 얽히게 됩니다. 현대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비판이 강력하게 표출된 영화입니다. 절대 권력에 맞선 개인의 고독을 그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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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West Sid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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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Everett Collection/Rex Featur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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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은 여러 차례 영화로 각색되었죠. 앙드레 카야트의 <베로나의 연인들(Les amants de Vérone)>(1949)은 이탈리아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촬영하는 언더스터디들의 이야기입니다. 피터 유스티노프는 <로마노프와 줄리엣(Romanoff and Juliet)>(1961)을 냉전 코미디로 연출했고, 바즈 루어만은 <로미오+줄리엣(Romeo+Juliet)>(1996)을 플로리다 배경으로 각색했습니다. 최고의 현대화 버전은 단연 1957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입니다. 극본을 맡은 아서 로렌츠는 뉴욕의 청소년 갱들 간 전쟁으로 드라마 설정을 바꿨습니다. 여기에 레너드 번스타인의 음악과 스티븐 손드하임의 가사, 제롬 로빈스의 안무가 더해졌습니다. 로버트 와이즈가 연출하고 제작한 동명의 영화는 아카데미상 10개 부문을 휩쓸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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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아이다호 My Own Private Ida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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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Moviestore Collection/Rex Featur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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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슨 웰스가 <한밤의 차임벨(Chimes at Midnight)>(1966)은 셰익스피어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영화 중에서도 최고 걸작 중 하나입니다. <헨리 4세>, <헨리 5세>,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을 두루 참고한 작품이죠. 조지아 출신 감독 오타르 이오셀리아니는 <달의 애인들(Favourites of the Moon)>에서 폴스타프의 유려한 연설을 인용했죠. 거스 반 산트의 <아이다호>는 <헨리 4세>를 재구성한 로드 무비입니다. 리버 피닉스와 키아누 리브스가 미국 북서부를 떠도는 게이 부랑자로 나옵니다. 영화는 왕자 핼과 헨리 4세, 폴스타프의 관계를 현대적으로 변주하며,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미국식 속어와 조합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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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최후의 승자 Men of Resp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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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릴리, 1991구로사와는 <거미의 성>에서 <맥베스>를 일본 사무라이 시대 배경으로 변주했습니다. 뉴욕을 배경으로 하면 이 작품은 강렬한 갱스터 영화가 됩니다. 존 터투로가 마피아 두목(로드 스타이거)의 심복 마이크 바탈리아를 연기하며, 아내 루디의 부추김으로 총을 들고 조직의 정점에 오르려 합니다. 그는 “여자에게서 태어난 놈 중에 날 해칠 수 있는 자는 없다”고 호언장담하하죠. 그를 위협하는 라이벌 맷 더피(피터 보일)는 택시에서 제왕절개로 태어났습니다. <최후의 승자>는 <조 맥베스>(1955)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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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 왕> 각색 영화 중 최고는 구로사와의 <란>입니다. 제인 스마일리의 퓰리처상 수상 소설을 원작으로 한 <천 에이커(A Thousand Acres)>(1997)는 대농장주 래리 쿡(제이슨 로바즈)이 세 딸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는 이야기로 페미니즘적 시각이 돋보이지만 <란>에는 못 미칩니다. 가장 기묘한 각색은 고다르의 <리어 왕>일 겁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오지만 예술만은 예외인 세계가 배경입니다. 위대한 예술 작품 상당수가 소실된 와중에 윌리엄 셰익스피어 주니어 5세가 잃어버린 예술을 되찾고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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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 10 Things I Hate About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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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Sportsphoto Ltd/Allst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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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괄량이 길들이기>를 각색한 영화는 많습니다. 더글러스 페어뱅크스와 메리 픽퍼드는 유성영화 데뷔작으로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선택했다가 혹평에 시달리며 쓴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리처드 버튼과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출연한 프랑코 제피렐리 버전(1967)은 무난했죠. 존 웨인과 모린 오하라라 나오는 <조용한 사나이(The Quiet Man) (1952), 서부극 <맥클린톡!(McLintock!)>(1963)도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변주입니다. 가장 유쾌하고 영리한 현대판은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입니다. 셰익스피어의 성 대결이 시애틀의 파두아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인기 미식축구 선수와 페미니스트 소녀의 이야기로 재탄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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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사랑의 헛수고 Love’s Labour’s L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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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Sportsphoto Ltd/Allst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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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이자 연출가인 케네스 브래너는 <헨리 5세>, <햄릿>,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원작에 충실한 영화로 연출한 바 있습니다. <사랑의 헛수고>에선 더 대담하고 매혹적인 시도를 보여 줍니다. 모차르트 오페라와 비교되기도 하는 이 희극을 1939년 영국으로 옮겨 온 것입니다. 나바르 왕과 세 명의 친구들은 여성과의 교제를 포기하고 옥스브리지에서 학문에 몰두하기로 맹세합니다. 원전의 텍스트는 과감히 축약되었고, 주요 정보는 뉴스릴(당시 뉴스 영상을 본뜬 형식)로 전달됩니다. 영국계 미국인 배우들이 영화를 마음껏 즐기며, 조지 거슈윈, 어빙 벌린, 제롬 컨, 콜 포터의 노래를 부릅니다. 안무는 1930년대 헐메스 팬과 버스비 버클리 스타일로 연출되었으며, 화려한 뮤지컬 요소가 가미되었습니다. 영화 마지막에 주인공들은 <They Can’t Take That Away From Me>의 선율과 함께 전쟁터로 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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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셀로>도 다양한 방식으로 각색되었습니다. 록 뮤지컬 <캣치 마이 소울(Catch My Soul)>, 영국 재즈 클럽을 배경으로 한 <올 나이트 롱(All Night Long)>, 서부극 <주발(Jubal)> 등이 대표적이죠. <오>는 <오셀로>를 가장 효과적으로 각색한 버전입니다. 미국 남부 명문 기숙학교를 배경으로 합니다. 유일한 흑인 학생이자 농구 스타 오딘(메카이 파이퍼)이 학장의 딸 데지(줄리아 스타일스)와 연애하다가 라이벌 휴고(조쉬 하트넷)의 음모에 휘말립니다. 콜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 여파로 개봉이 연기되기도 했지만 흥행에는 성공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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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Sportsphoto Ltd/Allst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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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연출가 줄리 테이머는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를 각색한 <타이터스>(1999)으로 영화감독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영화는 고대 로마와 무솔리니 시대 이탈리아를 뒤섞은 잔혹하고 환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반면 조셉 L. 맨키위즈가 연출한 <줄리어스 시저>(1953)는 고전적인 토가와 샌들 복장을 그대로 재현한 정통적인 각색이었죠. 하지만 둘 다 원작의 대사를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랄프 파인즈 역시 <코리올라누스>에서 셰익스피어의 원문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하지만 현대 세르비아에서 촬영해 구유고슬라비아 전쟁의 냄새가 짙게 밴 작품으로 만들었죠. <허트 로커(The Hurt Locker)>(2010)를 작업한 배리 애크로이드가 촬영을 맡았습니다. 전투 신이 강렬한 몰입감을 선사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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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옵저버(The Observer)
일요일에 발행되는 영국 신문. <가디언(The Guardian)>지의 자매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일요 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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