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입니다. 📽️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 생강의 영화 이야기와 함께 읽어 볼 희곡 소개를 전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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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2월입니다. 페이스를 늦추고 지난 1년을 돌아보며 기릴 것과 버릴 것을 생각하는 연말입니다.
'생강'이 올해 감상한 영화 목록을 공유하고 그중 특별히 추천할 몇 편을 꼽아 소개하는 글을 보내 주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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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간 영화에게 소홀했던 자신을 반성하며 올해는 부지런히 영화관에 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부끄럽지만 나는 집중력이 부족해 영화관에 가지 않으면 영화를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나름 열심히 영화관에 갔습니다. 그래 봐야 주말에 한 편 정도 보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본 영화들을 나열해 놓고 보니 나름 ‘올해 본 영화 리스트’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연말을 맞아 독자분들께 그 리스트, 그중에서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영화를 공유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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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전에 잠깐,
정작 ‘생강’을 제대로 소개해 드리지 못했네요.
늦었습니다. 1년 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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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은 커뮤니케이션북스 출판사 편집자입니다. 그런데 어쩌다 지만지드라마 뉴스레터에 영화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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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입니다. 영화를 좋아하고 글 쓰는 것도 좋아하는데 생각을 펼칠 공간이 없었습니다. 마침 지만지드라마 뉴스레터 팀에서 제안을 주었습니다. 매달 한 편 영화 리뷰를 써 달라고요. 사실 제가 영화 평론가도 아니고 글재주가 뛰어난 것도 아닌데 구독자분들께 제 글 보여 드리기가 좀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올해 뉴스레터를 쓰면서 한동안 잊고 있던 즐거움을 찾았습니다.
영화는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계기가 된 건 홍상수 감독의 <북촌 방향>이었어요. 영상을 시간 역순으로 재생한 예고편을 봤는데, 장면에서 뭔가 일어나고 있구나 느꼈어요. 단지 영상을 되감기한 것뿐인데 거기서 새로운 의미가 생성되고 있었죠. 나중에 제가 좋아하는 남다은 평론가가 이 예고편을 분석한 글을 보고 놀란 기억이 있습니다. 영화가 이런 식으로 말을 하는구나, 느끼게 됐어요. 영화가 뭔지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때부터 영화를 열심히 봤습니다. 1년에 200-300편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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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의 영화 <북촌 방향>(2011) 트레일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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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I를 드리자면 2017년은 생강이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던 때였습니다. 2017년을 기점으로 영화를 보는 관점과 태도에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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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라는 사상가에게 빠져 있었습니다. 《시네마》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무렵 영화를 보면 책 속 구절이 막 떠올랐어요. 영화를 좀 분석적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엔 이야기 중심으로 봤다면 이후론 ‘이 장면 뒤에 왜 이 장면이 나오지?’ ‘이 장면은 왜 이렇게 찍었지?’ ‘왜 지금 저 사물에 집중하지?’ 이런 것들에 주목하면서 영화를 봤어요.
(책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책에선 영화사를 크게 세 시대로 구분합니다. 여기서 얘기하는 건 개괄적인 내용이고, 구체적으로는 다른 내용이 많습니다. 첫째는 운동-이미지 시대, 할리우드 영화가 여기 속해요. 서사가 짜임새 있잖아요? 누가 봐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구성이고요. 영화를 보고 나면 감정적으로 충만함을 느끼게 되죠. 이런 완결된 서사 중심으로 할리우드 영화 문법이 형성되는데 이것이 운동-이미지의 등장입니다. 그런데 2차 세계 대전 이후 예술 무용론이 심각하게 대두돼요. 영화가 뭔가 다른 걸 해야 하지 않나, 하는 문제의식이 생기고요. 이때 이탈리아에서 네오리얼리즘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전후 유럽을 혼란스럽게, 하지만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들이 나왔어요. 들뢰즈는 이 시기를 과도기로 정의했습니다. 이전 (운동) 이미지에 대한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이미지가 등장했다고 보는 거죠. 1960년대부터는 프랑스 누벨바그 계열의 영화들이 등장합니다. 흔히 현대 영화의 기수라 불리는 장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같은 영화감독들이 활약하죠. 기존 영화 문법에 따르지 않고 독창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데, 말하자면 시간을 재구성한 이미지들입니다. 책에서 들뢰즈는 운동-이미지 시대가 시간-이미지 시대로 이행하는 여정으로 영화사를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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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영화에 빠져들어 1년에 200-300편씩 영화를 봤지만 2021년 출판사에 들어오고부터 편수가 10분의 1로 줄었다고 해요. 올해는 매주 한 번 영화관에 가기로 마음먹고 55편의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어떤 영화들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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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 기획전 위주로 챙겨 봤습니다. 멀티플렉스 상영관에서 재개봉한 아트하우스 영화들도 찾아 봤고요. 그중 소마이 신지 <이사>는 제 감정을 많이 흔들어 놓았습니다. 부모 이혼을 겪고 방황하는 초등생 여자아이가 주인공입니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모를 졸라 가족 여행지였던 호수로 여행을 가는데요, 이곳에서 렌은 작년 부모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렌은 ‘오마데토 고자이마스(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 우리말로 옮기면 ‘축하합니다’라고 말하며 과거 자신을 끌어안아요. 렌 스스로 자신을 치유한 거죠. 그 과정이 불과 물의 이미지를 통해 무척 아름답게 그려집니다. 영화를 본다면 아마 제가 왜 이렇게 말하는지 다들 공감할 수 있을 거예요. 반면 하마구치 류스케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기대만큼은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워낙 인기 있고, 또 각본을 잘 쓰기로 유명한 감독인데, 이번 영화는 개인적으로 과도기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뉴스레터에도 쓰긴 했지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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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마이 신지의 <이사>(1993). 렌이 과거의 렌을 안아 주며 스스로 상처를 극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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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에 소개된 영화는 감명 깊게 봤다는 <이사>가 아니라 기대보단 별로였다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였습니다. 궁금해졌습니다. 어떤 작품들이 뉴스레터 글감으로 ‘선택’되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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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본 영화를 소개하고 싶어서라기보다, 인상 깊게 보고 나름대로 해석한 장면에 대해 다른 사람들 얘기도 들어 보고 싶어 글을 씁니다. 가장 공들여 쓴 게 <존 오브 인터레스트> 편이었는데, 이 글을 본 구독자분이 리뷰를 남겨 주셨어요.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 관한 뉴스레터 뜻깊게 읽었습니다”라는 내용이었는데 무척 기뻤습니다. 논쟁적인 작품이라 생각을 표현하기가 조심스러웠거든요. 영화 리뷰를 쓰고 있긴 하지만 사실 제가 평론가는 아니잖아요. 스스로는 확신을 갖고 쓰는데, 다른 의견이 궁금하긴 해요. 어디까지나 감상의 영역이니까 맞다 틀리다 논할 건 없겠지만, 생각에 대한 의견을 받는 건 참 기분 좋은 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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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듣고 보니 생강의 영화 취향이 분명해집니다. 아트하우스 영화, 고전, 독립 영화 위주로 감상하고 장면 단위로 영화를 분석하고. 앞으로 우리는 생강에게 어떤 영화 얘기를 듣게 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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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뉴스레터를 쓰면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영화로 어떤 얘길 해도 희곡 추천에 문제가 없구나! 아무래도 지만지드라마 뉴스레터 구독자에게 읽힐 글이니까 이런 얘기에도 관심 가져 주실까, 그런 생각을 했는데 좀 더 틀에서 벗어나 그때그때 날것인 생각 그대로 영화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전체 서사보단 특정 장면에 대한 얘기로 풀어 나갈 텐데, 예를 들면 “내가 이 장면에 매혹된 이유” 같은 내용으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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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연극을 볼 때 사용하는 감각은 다른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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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생강의 영화 이야기에는 언제나 함께 읽을 희곡 추천이 따릅니다. 영화의 내용과 형식이 전하는 메시지는 연극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차이도 있습니다. 둘 다 극장이란 공간에서 관객과 만나는 예술이지만 관람 방식은 확연히 다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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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시네필이라 부를 수 있는 영화광은 1년에 영화를 500편씩 보기도 해요. 왕빙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이 있는데,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네 시간짜리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습니다. 정성일 평론가가 영화 해설하는 자리에 참석했는데, 그러더라고요. “지하에서 힘든 시간 보낸 여러분의 열정에 감사합니다!” 영화 좋아하는 분들은 대부분 그런 것 같아요. 영화에 온전히 빠져서 자기 시간을 보낼 준비가 돼 있죠. 영화는 정보 흐름이 일방향입니다. 극장은 화면이 전하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공간이죠. 극장에서 받아들인 이미지를 관객이 스스로 이리저리 조합해 의미를 형성해 가는 활동이 중요합니다. 이런저런 면에서 영화관은 좀 자기 폐쇄적인 공간이 아닐까 생각해 왔어요. 역으로 질문할게요, 영화를 볼 때와 연극을 볼 때, 사용하는 감각이 다른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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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제가 답변해 봤습니다.
"완전히 다릅니다. 연극을 볼 때 저는 관객으로서 연기합니다. 무대 위 배우와 옆자리 관객에게 좋은 에티튜드를 보여 줘야 한다고 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돼요. 커튼콜 땐 '긴 시간 힘들게 준비했을 공연 감사히 잘 봤고, 앞으로도 응원하겠다'라는 메시지를 눈빛에 담아 열렬히 박수를 칩니다. 영화관에선 상영 시간 내내 졸 때도 있는데, 극장에선 눈치를 봐요. 관객도 배우와 마찬가지로 무대를 의식하는 거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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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빅토르 에리세의 <벌집의 정령>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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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호성이 연극을 정치적으로 만듭니다. 그렇다면 영화는 어떤 방식으로 관객과 시대의 고민에 응답할까요? 말하자면, 지금 시점에 우리는 어떤 영화를 보고 지혜를 구할 수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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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에리세의 <벌집의 정령>을 추천합니다. 감독의 데뷔작이에요. 스페인 프랑코 독재를 겪고 난 뒤 1970년대에 나온 영화인데, 독재 시기 어둠, 그 가운데 안온함, 거기서 벗어나려는 어린 영혼, 이런 것들이 벌집 패턴, 빛깔, 초현실성으로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같은 이야기라 해도 그걸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메시지와 느껴지는 감정이 다르잖아요. 예를 들어 우리가 이렇게 영화와 연극에 대해 대화하는 장면을 누군가가 카메라에 담을 때 의도적으로 손가락을 클로즈업한다고 가정하죠. 그러면 그 장면에서 돌출되는 메시지가 생기죠. 상투와 관습을 벗어나서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의미를 만들어 내는 작가주의 감독들이 있습니다. 에리세의 <벌집의 정령>을 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거예요. 관객에 따라 감상이 다를 거고, 어떤 장면들에선 의문이 들기도 할 텐데 그 공감과 차이 포인트에 주목해 보면 아주 재밌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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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에리세의 <벌집의 정령>(1973)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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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생강은 '진저(ginger)' 아니라 '강생'을 거꾸로 한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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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왜 ‘생강’을 필명으로 삼게 됐는지 소개하는 걸 잊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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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단에 아주 사실적인 ‘생강’ 사진을 사용해 주셔서 ‘진저(ginger)’의 의미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대만 뉴웨이브 감독들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중 차이밍량 감독의 페르소나인 이강생 배우의 이름을 거꾸로 한 거예요. ‘강생’을 ‘생강’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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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에 대한 궁금증이 조금은 해소되었길 바라며, 이제야 본론입니다.
그래서 어떤 영화를 추천해 줄 건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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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발견 | 에드워드 양, <독립시대>
누군가 내게 “제일 좋아하는 감독이 누구에요?”라고 묻는다면 늘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에드워드 양이다. 이번에 국내 첫 개봉한 <독립시대>는 그간 내가 에드워드 양을 좋아하는 이유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날 설레게 했다. 수많은 말의 향연에서 터져 나오는 도시의 뒤틀린 욕망. 올해 발견한 에드워드 양의 새로운 얼굴이었다.
올해의 신 | 소마이 신지, <이사>
렌은 부모님의 이혼으로 혼란스럽다. “왜 낳았어?”라는 질문에 부모는 대답하지 못한다. 그 어디에도 렌을 위로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모두를 떠나 숲을 헤매던 렌은 비와코 호수에서 1년 전 행복하던 자신을 마주하고, 누구도 위로해 주지 못한 자신을 스스로 껴안는다. 그 안개 낀 물가와 타들어가는 불놀이차, 그리고 그 속에서 렌이 외치는 “오메데토 고자이마스!(축하합니다!)”라는 목소리가 아직도 선하다.
올해의 숏 | 홍상수, <수유천>
홍상수의 프리즈 프레임 숏은 드문만큼 언제나 특별하다. <클레어의 카메라>가 그랬고, <수유천>이 그렇다. 최근 몇 년간 ‘소품집’ 같던 그의 영화에서 벗어나 연극적이고 풍성한 서사를 구성한 홍상수는 마지막 숏으로 “아무것도 없다”를 외치며 웃는 전임(김민희)의 미소를 담았다. 그 순간 세상의 모든 갈등이, 고통이 해결되는 것 같았다. 비록 착각일지라도, 그 순간엔 그랬다.
올해의 감독 | 알리체 로르바케르
로르바케르 감독을 처음 접한 것은 <행복한 라짜로>(2018)에서였다. 당시 ‘노동’과 ‘미(美)’라는 키워드로 정리했던 그에 대한 감상을 로르바케르의 전작을 보면서 새롭게 쓸 수 있었다. 로르바케르가 만드는 ‘마법적 순간’들은 에르만노 올미를 따르는 목가적 풍경과 풍부한 역사적 레퍼런스에서 비롯한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나의 ‘성장’을 느끼게 한 감독.
올해의 작품 | 자파르 파나히, <노 베어스>
개인적으로 ‘영화’ 개념에 메타적으로 접근하는 영화를 좋아한다. 파나히의 <노 베어스>는 영화의 불가능성을 주장함으로서 ‘영화’로 성립하는 영화다. 유독 국가적으로 시끄러운 일이 많았던 한 해다. ‘이럴 때 예술이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이 들 때마다 들여다보게 되는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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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and) Happy New Ye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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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희곡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주선해 보려고 했습니다. 영화에 대한 관심이 희곡으로, 희곡에 대한 관심이 영화로 확장되길 바라면서요. 결산의 자리도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나 봅니다. 인터뷰 도입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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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보다 어수선한 연말입니다. 다가올 날이 지난날보다 조금 더 빛나길 바랍니다.
자연스럽게 인사드립니다.
Happy New Year!
새해에 더 꽉 찬 지식과 정보로 돌아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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