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주어캄프는 나치 집권기 독일에서 헤세의 ≪유리알 유희≫를 출간해 옥고를 치릅니다. 그가 피셔에서 나와 새로 출판사를 차릴 때 많은 작가가 그를 따랐습니다. 외압에 굴복하지 않고 내야 할 책을 낸 출판업자의 뚝심을 믿어 준 것입니다. 그 결과 20세기를 건너오면서 주어캄프는 “주어캄프 문화”라는 새로운 지적 흐름을 만들어 내며 독일의 문화 아이콘으로 떠올랐습니다.
창립 당시부터 주어캄프를 이끈 편집 기획자 지크프리트 운젤트는 “책이 아니라 저자를 출판한다”고 말합니다. 그로부터,
쟁쟁한 작가, 사상가들의 세계가 열렸습니다. 책이 아니라 저자, 즉 저자의 사유를 출판함으로써 독자를 쫓아가기보다 새로운 세계로 이끄는 것이 바로 주어캄프의 출판 철학입니다. 우리가 브레히트를 <서푼짜리 오페라>의 작가에서 한 발 나가 '서사극 이론'의 창시자로 기억하게 된 것은 주어캄프의 이런 출판 철학 덕분이기도 합니다.
주어캄프가 펴낸 극작가들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을 시작한 1930년대, 브레히트는 망명으로 작품 활동을 잠정 중단하고 독자적인 연극 이론 개발에 매진했습니다. 브레히트는 현대 연극이 궁극적으로 나치즘이 확산하던 어두운 현실을 개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연극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고 일상에서 감지되지 않는 복잡한 사회적 역학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 20세기 연극 예술의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어떻게 하면 관객이 현실 개선을 위해 행동하게 할 수 있을까? 기존의 연극으로는 불가능했습니다. 브레히트에게는 20세기의 급변하는 사회를 반영할 수 있고, 현실 개선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새로운 연극이 필요했습니다. 브레히트는 서사극에서 그 가능성을 찾았습니다.
구동독 출신이지만 서구 연극계에서 더욱 주목받은 극작가입니다. 본격적으로 창작을 시작한 1950년대 이후 사망에 이르기까지 하이너 뮐러의 도정은 비난과 오해 그리고 찬사가 뒤섞인 모순의 과정이었습니다. 동독 문화 정책과 마찰을 빚으면서 출판과 공연이 금지되는 불행을 겪었고, 통일 이후에는 동독국가보위부(슈타지)에 가담한 전력으로 비난받았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전 독일에서 그의 문학을 중요하게 평하는 글들이 쏟아져 나왔고, 1990년에는 프랑크푸르트 연극제 ‘엑스페리멘타 6’(1990. 5. 19∼1990. 6. 4)이 그에게 헌정되었습니다. 역사를 중심 주제로 한 언어의 독창성, 기존의 형식을 파괴하는 새로운 극작법으로 “브레히트 이후 가장 의미 있는 독일어권 극작가”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역사에 존재하는 억압과 착취, 권력구조, 인간의 야만성, 구조적 폭력, 자본주의와 물질문명 등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몽타주와 콜라주, 시와 산문을 삽입하는 형식 파괴적인 텍스트로 전달하는 특징을 보여 줍니다.
1947년 브레히트를 만나면서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프리슈의 작품은 무대장치를 최소화하고 무대를 두 부분으로 나누어 연출하도록 한 것이 특징입니다. 여기에 코러스 사용, 인물이 직접 관객에게 말하는 방식으로 관객이 무대 위 인물과 사건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이런 방식은 브레히트의 서사극 기법을 연상시키지만 프리슈는 특별히 연극의 경향성을 좇지는 않았습니다. 프리슈는 “무대는 곧 인간의 정신세계”라고 생각했으며 연극을 통해 질문을 던질 뿐 이념에 대한 확신은 전달하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현대 독일어권 문학을 대표하는 문제 작가이자 세계무대에서 브레히트와 더불어 가장 많이 공연되는 극작가입니다. 청소년기 독일 소재의 학교에서 가혹한 체벌, 감금, 나치 소년단의 폭력에 시달린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어 훗날 베른하르트의 전 작품을 관통하는 오스트리아 국가와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에 기저를 이룹니다. 베른하르트 문학이 오스트리아 사회에 일으킨 돌풍은 오스트리아의 나치 독일 합방 50주년과 빈 부르크테아터의 100주년 기념 공연작인 <영웅광장>(1988)에서 정점을 찍습니다. 정치권에서는 그의 작품에 대한 검열과 금지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집권 여당인 자유당 대표였던 하이더는 수도 빈에서 베른하르트를 몰아내고 그의 작품을 금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1989년 베른하르트는 사망하기 이틀 전 직접 공증을 마친 유언장을 통해 조국 오스트리아 국경 내에서 자신의 작품이 출판·공연되지 못하도록 조치했습니다. 일종의 “사후 문학적 망명”을 택한 셈입니다.
폴커 브라운의 작품들은 주로 역사 진행 과정에서 ‘개인과 사회’, ‘주인공의 일상에 나타난 사회적 모순’을 주제로 합니다. 그가 쓴 시대극은 모두 사회에 현존하는, 사회 구성원인 개인의 성장을 저해하는 실질적인 사회적 문제들을 보여 줍니다. 그러면서도 해결 방법을 제시하기보다 ‘열린 결말’을 통해 토론거리를 던지고 있습니다. 관객이 스스로 무대에서 본 모순의 원인을 생각해 보고 그 극복과 개선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브라운에게 연극이란 다양한 현실 주제를 놓고 여러 사람들이 의견을 나누게끔 하는 토론의 무대입니다. 통일 전에는 동독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 체제의 한계를 지적했다면 통일 이후에는 미래 인류에게 닥칠 불행을 예견하고 경고하는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