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씨 고아 趙氏孤兒 기군상, 정유선, 중세, 130쪽, 979-11-288-3564-3 개요 ≪사기(史記)≫에 나오는 춘추(春秋) 진(晉)나라 영공 때의 간신 도안고(屠岸賈)와 충신 조순(趙盾) 이야기를 극화했다. 줄거리 도안고는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음모를 꾸며 정적 조순 일족을 몰살하고 후에 태어난 조순의 손자까지도 죽이려 한다. 그러나 조씨 집안의 보살핌을 받았던 식객 정영이 고아를 살려 장성시키고 조씨 집안의 원수를 갚게 한다. 등장인물 남 10 / 여 1 배경 춘추 진나라 도안고의 집 안팎 공연 시간 2시간 주제어 비극 / 복수 / 역사 기록에서 소재를 얻은
제4절. 진실을 밝히기 위해 20년을 기다린 정영, 그리고 복수의 서막.
조씨고아(赵氏孤儿)는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대표적인 원대 잡극입니다. 중국의 <햄릿>이라 불리는 복수극입니다. 춘추시대진(晋)나라의 원대에 기군상(紀君祥)이 잡극으로 각색했습니다.
때는 진대영공 집권기, 세도가 조순을 시기한 도안고가 흉계를 내어 조순을 모함하고 그 가솔 300여 명을 몰살했습니다. 급기야 유복자로 태어난 조순의 친손주까지 죽여 조씨 집안의 씨를 말리려 하자 조씨 집안과 친분이 있던 정영이 아이를 빼돌립니다. 아이가 사라지자 도안고는 성 안의 갓 태어난 남자아이들을 모조리 죽이려 듭니다. 정영은 공손저구와 짜고 자신의 아들을 조씨네 유복자로 둔갑시켜 도안고에게 바칩니다. 도안고의 신임을 얻게 된 정영은 조씨 고아를 데려다 이름을 '정발'이라 하고 도안고의 보살핌 아래 아들로 키웁니다. 정발은 정영에게 글을, 도안고에게 무예를 배워 훌륭한 청년으로 자랍니다.
어느덧 20년이 흘렀습니다. 정영은 더 늦기 전에 정발에게 조씨 집안의 비극을 들려주기로 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연극 무대를 떠올려 보세요. 양옆, 뒤쪽이 벽으로 막힌 무대에서 배우들이 극 중 인물과 상황에 몰입해 연기를 펼칩니다. 무대 전면, 즉 객석이 바라보는 곳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벽이 있는 것처럼 가장합니다. 보이지 않는 그 벽을 경계로 무대 위 세계는 객석의 세계와 철저히 분리됩니다. 관객은 마치 벽 너머의 세계를 엿보듯 연극을 관람합니다. '제4의 벽'이란 개념은 이후 사실주의 연극의 기반이 됩니다.
<조씨 고아>에는 이런 제4의 벽을 무력화하는 장면들이 자주 나옵니다. 주인공이 갑자기 관객을 향해 말을 걸거나 극 중 배경이 되는 사건 혹은 새로운 인물을 소개할 때입니다. 무대 위 세계관과 관객의 세계관이 뒤섞이는 순간입니다.
도안고
나는 바로 진나라 대장군 도안고올시다. 우리 주군 영공은 재위하실 때 문무백관 중 신임하는 이가 오로지 문관 한 사람과 무관 한 사람뿐이었는데, 문관은 조순이고 무관은 바로 나올시다.
우리 문관과 무관 두사람은 사이가 좋지 못해, 나는 항상 조순을 해치려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지만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지요.
(중략)
나는 벌써 사람을 시켜 말 두 마리를 떼어 내고 바퀴 하나를 빼 놓아 마차에 올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게 해 놨답니다. 그런데 옆에서 장사 하나가 돌아 나오더니 한 손으로는 바퀴를 굴리고 한 손으로는 말을 채찍질해 산에 들어가면서 길을 열어 조순을 구출해 냈지요.
그자가 누군지 여러분 아시겠소?
관객은 그 순간 극 중 상황에서 빠져나와 몰입을 잠시 중단합니다. 관객의 반응을 살피며 이야기를 전달했던 강창 문화의 특징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제4의 벽'을 허물고 관객이 극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는 이런 방식은 브레히트가 서사극과 생소화 효과(소외 효과)라는 개념을 정립하는 데도 영향을 미칩니다.
볼테르도 매료된 이야기.
<조씨고아>의 진가는 일찍이 서양에서도 알아봤습니다.
바로 볼테르가 이 작품에 주목했습니다. 디드로와 함께 백과 전서 간행에 힘쓴 계몽주의 사상가, <캉디드>의 저자로 더 유명한 볼테르는 사실 18세기 프랑스에서 누구보다도 왕성하게 활동했던 극작가였습니다.
"유럽의 어떤 작품보다도 훌륭해!"
볼테르는 우연한 기회에 북경에 파견되어 있던 한 선교사가 번역한 <조씨 고아> 원고를 접하고는 이렇게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곧 <조씨 고아>를 오마주해 <중국 고아>를 써내려갑니다. 당시 동양에 대한 유럽인들의 지식과 이해가 일천했기 때문에 사정에 맞지 않는 설정이 등장하긴 하지만 볼테르의 시도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이후 볼테르의 이 각색 버전은 유럽 전역에 소개되어 대단한 인기를 누렸고, <조씨 고아>는 동양 희곡 최초로 서양에 수출된 작품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조씨 고아, 복수의 씨앗.
고선웅 각색과 연출의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2015년 국립극단 제작으로 초연된 뒤 해마다 재공연되는 인기 레퍼토리입니다.
오래된 피의 복수 이야기가 시공을 초월해 근대의 유럽에서, 오늘 한국에서 이토록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조씨 고아를 지키고자 하는 충신들의 희생은 좀 가혹할 정도입니다. 섬기던 주군을 위해 뭘 저렇게까지?!! 하지만 이들이 조씨 고아의 복수를 꼭 성사시키려 한 데는 당시 백성들의 간절한 바람이 서려 있었습니다. 기군상은 원나라 때 활동한 희곡 작가입니다. 원의 폭정이 날로 가혹해지던 때, 불의에 맞선 신념과 정의를 염원한 백성들의 마음을 끌어안으며 기군상은 이 복수 비극을 썼습니다. 그는 불의의 시대에 어떻게 정의를 구해야 하는지 보여 줍니다.
모든 걸 걸고 불의에 맞서는 자세는 권선징악의 주제를 뛰어넘어 진한 감동을 줍니다.
내가 네놈을 용서하리라고는 절대 생각지 마라. 네놈을 가뿐히 패대기쳐 천천히 죽여 주리라.
뼈에 사무칠 만큼 깊은 원한을 조씨 고아가 어떻게 갚아 주는지도 봐야 합니다. 조씨 고아는 햄릿처럼 원수에게 독을 쓰지도, 칼을 꽂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용서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차이에 주목한다면 500년 전 동양의 복수 비극이 훨씬 세련되게 와 닿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