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메데이아를 가장 잘 묘사한 그리스 비극. 줄거리 콜키스의 공주 메데이아는 조국과 가족, 형제를 배신하고 이아손을 따라 코린토스로 향한다. 이아손은 그런 메데이아를 저버리고 코린토스의 공주와 결혼한다. 분노한 메데이아는 복수를 위해 코린토스의 공주는 물론 이아손에게서 난 자신의 두 자식까지 살해한다. 등장인물 남 6 / 여 2 / 코린토스 여인들로 구성 된 코러스 배경 코린토스 궁정 장과 막 제 5삽화 공연 시간 2시간 주제어 비극 / 배신 / 복수 / 치정
제1삽화(p.46) 장면에 대해.
<메데이아>는 그리스 전역에 펠레폰네소스 전쟁의 먹구름이 드리우던 기원전 431년에 상연되었습니다. 인간의 폭력성과 그에 대한 공포가 이 작품에 드러나고 있음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 비극은 콜키스 출신의 공주 메데이아는 남편 이아손을 따라 그리스에 정착합니다. 하지만 그리스에서 그녀는 이방인이었고 그리스 사회는 그녀를 배격했습니다. 게다가 그녀가 유일하게 믿고 의지한 남편 이아손이 정치적인 이유를 핑계로 메데이아를 배신합니다. 메데이아는 이아손이 "야만족 출신 아내 때문에 명예가 실추될까 봐" 자신을 버리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조국도 아버지도 형제도 버린 맹목적인 사랑의 대가가 배신이라면, 이방인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그리스에서 완전히 혼자가 되어 버린 메데이아가 느꼈을 절망, 고통은 말할 수 없이 컸을 겁니다. 메데이아는 이아손에게 가장 끔찍한 고통을 안겨 주리라 다짐합니다.
이 고통과 괴로움, 아무리 울어도 시원하질 않구나! 아! 버림받은 어미의 저주 받은 자식들! 너희들도 죽어 버려라! 네 아비와 함께 사라져 버려라! 이 집안 모두 깡그리 사라져 버려라!
장면은 메데이아의 복수가 시작 되는 부분입니다.
새장가를 들고 메데이아 앞에 나타나 뻔뻔하게 구는 이아손을 보고 그녀는 분노합니다.
아! 아! 천하에 몹쓸 비겁한 인간! 그래요, 이것이 비겁한 당신을 두고 입에 담을 수 있는 제일 큰 비난입니다. 너무나 가증스러운 당신이 어찌 나와 자식들 앞에 나타날 수 있소? 가족들에게 그런 몹쓸 짓을 했으면서 멀쩡하게 우리 앞에 나타나다니, 이건 용기도 자신감도 아니야. 인간을 좀먹는 병 가운데서도 가장 나쁜 몰염치란 병에 걸린 자의 행동이야. 하지만 잘 왔어요. 당신을 욕하면 속이라도 시원해질 테지. 당신이야 듣기 거북하겠지만…. 처음부터 이야기해 볼게요. 당신 목숨을 구해 준 건 나였어요. 황금 양모피를 찾아 아르고호에 함께 탔던 선원이라면 누구든지 알고 있어요. 당신은 불을 뿜는 황소에게 멍에를 씌워 죽음의 밭에 씨앗을 뿌리도록 되어 있었죠. 황금 양모피를 지키느라고 몇 겹이고 똬리를 틀고 잠도 자지 않는 거대한 뱀을 죽여 당신 목숨을 구한 것은 바로 나였어요. 그러고 난 후 나는 아버지고 집이고 모두 다 버리고 앞뒤를 따지지 않고 펠리온 산의 기슭에 자리 잡은 이올코스 땅으로 당신을 따라갔어요. 거기서 펠리아스 딸들의 손을 빌려 가장 비참한 방법으로 제 아비인 왕을 죽이게 했지요. 그래서 나 때문에 당신은 근심을 덜었지요. 당신을 위해 이 모든 끔찍한 일들을 했어요. 그러나 당신 이아손은 날 배신하고 새장가를 들었지요. 자식까지 둔 사람이 어찌 그럴 수가! 자식들이 없었더라면 새장가 드는 걸 용서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자식까지 둔 당신은 좋아하면서 새장가를 들었어요. 백년가약의 굳은 맹세는 사라졌어요. 당신이 맹세했던 그 신들은 이제 모두 사라져 버렸나요?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가 바뀌었나요? 설마 당신이 그때 나에게 한 맹세를 깨뜨렸다는 걸 잊어버리진 않았겠죠. 아! 당신이 맹세를 하면서 잡았던 나의 이 오른손, 그리고 사악한 남편 손에 더럽혀진 나의 이 무릎에 저주가 내려라! 모든 희망은 사라지고 말았으니…. 솔직히 말해 보세요. 당신이 아직 친한 친구인 것처럼, 당신께 뭘 기대하는 사람처럼 묻겠어요. 그럼 당신의 비열함이 더 드러날 테니까. 이제 난 어디로 가야 하죠? 아버지에게? 아니면 내 조국으로? 이아손이란 양반을 따라갈 때 난 아버지를 배반하고 조국을 배반했어요. 나 메데이아는 어디로 가야 하죠? 펠리아스 왕의 불쌍한 딸들에게? 그런데 제 아비를 죽인 나를 그들이 반갑게 맞아 줄까요? 이게 바로 내가 처한 상황입니다. 이아손이란 사람을 위해 난 고향 친구들과 원수가 되었고 해칠 아무 이유가 없는 사람들과 원수가 되었어요. 바로 당신 때문에. 그 보답으로 당신은 그 많은 그리스 여인들 가운데 나를 가장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 주셨지요. 메데이아는 참 복도 많은 여자랍니다. 나처럼 가련한 여자가 당신처럼 충실하고 훌륭한 남편을 만났으니까. 불쌍한 내가 친구도 하나 없이 홀로 아이들을 데리고 귀양길에 오른다면, 당신은 훌륭하다는 말을 듣겠죠? 목숨을 구해 준 아내와 그 자식들이 거지꼴을 하고 방랑하면 새장가를 든 당신은 정말 훌륭한 사람이란 말을 듣겠죠? 아! 제우스여, 당신은 진짜 황금과 가짜 황금을 구별하는 확실한 방법은 가르쳐 주셨어요. 그런데 어찌하여 사악한 인간을 가려낼 수 있는 표시는 사람 몸에 남겨 두지 않으셨습니까?
-<메데이아> 제1삽화, 메데이아의 대사
메데이아를 위한 변명.
메데이아는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식들을 살해한 끔찍한 여인으로 비난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는 상당히 입체적인 인물이라 '악녀'로 단순화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조국을 배신하고 남편을 따라 이주해 온 그리스에서 이방인이란 이유로 차별과 멸시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게다가 그리스 왕 크레온은 딸에게 위협이 될까 두려워 메데이아에게 추방 명령을 내렸습니다. 자신이 떠난 뒤 그리스에 남게 될 자식들을 두고 메데이아는 생각이 많아집니다.
다른 이의 증오에 찬 손길에 내 자식의 목숨을 맡기지는 않겠어요. 어차피 부지할 수 없는 목숨이라면 차라리 이 어미 손으로 거두는 게 나아. 자, 마음을 단단히 먹자. 주저할 필요 없어. 아무리 끔찍해도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자, 이 손으로 칼을 잡아라. 칼을 잡고 나아가 이 쓰라린 삶에 종지부를 찍어라. 결승점으로 다가서라.
에우리피데스는 메데이아를 끔찍한 복수의 화신으로만 그리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왜 복수에 나서야 했는지, 어째서 자식 살해라는 가장 끔찍한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작품 곳곳에서 여러 번 이유를 언급합니다. 물론 극 후반으로 가면 이성을 잃고 폭주하는 메데이아를 더 이상 연민할 수 없게 되지만, 에우리피데스가 그녀를 악녀, 마녀로 단순화할 수 있는 평면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고뇌하고 갈등하고 절망하는 입체적인 인간으로 제시하고 있음에 유의한다면 메데이아에 대한 해석이 훨씬 풍부해질 거예요.